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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문화관광해설사로 ‘제2의 인생’ 조영규씨

“사천의 숨은 이야기, 속시원히 알려드립니다”

  • 기사입력 : 2017-08-1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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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부지방의 오랜 가뭄에도 7월 말 사천 다솔사 솔숲은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여름날 햇볕은 솔가지를 거치며 뜨거움은 걸러지고, 청량한 빛으로만 퍼졌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난 경사 얕은 오르막길은 평일이라 다른 차량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 30℃를 훨씬 넘는 높은 기온에도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열어 천천히 오를 수 있었다.

    800m 남짓 숲길을 벗어나자 절 아래 제법 넓은 주차장과 그 한쪽에 10㎡ 정도 크기의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나타났다. 기자가 만나러 온 조영규(66)씨가 근무하는 곳이다. 기자의 방문에 얼른 덮고 나온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역사 또는 문화해설서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비행기 엔진 교과서’였다. 개인적인 관심도 있고, 항공우주박물관이나 첨단항공우주과학관 방문객들에게 충실한 해설을 위해서 읽고 있다는 설명에서 그의 성실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씨는 1950년 11월 사천시 용현면에서 태어나 용현초등학교, 용남중학교, 진주농림전문학교를 거쳐 1970년 11월 사천시 공무원(농업직)이 됐다. 90년대 초 행정직으로 전직했으며,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사천시청 문화관광과에 문화재계가 생길 때 첫 계장을 맡았다고 한다. 그의 문화관광해설사란 제2의 인생은 이미 공무원 시절 예정돼 있었던 모양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지인에게 보증을 섰던 게 잘못돼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마음을 진정시키려 용현조기회에 참여했는데, 조기회 회장으로 계셨던 문인섭씨가 퇴직금으로 향토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새복’(새벽의 경상도 사투리)이라는 간행물을 매달 내더라고요. 평소 지역 역사나 문화, 유적지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나도 함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면서 사천시보에 몇 차례 기고를 하다 보니 첫 문화재계장이라는 직책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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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씨는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이 시기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여기고 있다.

    “나와 가족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엄청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성숙해진 시기였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당시의 독서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얻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힘들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는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정년보다 3년 앞서 2007년 12월 명퇴, 용현면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동생 일을 도우며 2년간 소일을 하다 2009년 문화관광해설사를 지원했다.

    “퇴직 전부터 지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조명군총’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길 결심했습니다. 조명군총 (朝明軍塚)은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결전을 벌이다가 희생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병사들의 무덤입니다. 왜군은 ‘경관(景觀)’이라는 팻말을 적어 자신들의 전공을 자랑했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강점기 때는 무덤 위에 ‘당병공양탑(唐兵供養塔)’이란 표석을 세워 전승지로 삼았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조명군총을 ‘귀무덤(耳塚)’으로 알거나 부르고 있습니다. 심각한 역사의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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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문화해설사 조영규씨가 곤명면 다솔사에서 적멸보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명군총 옆에 이총 조형물이 생기면서 오해를 사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1990년 부산 자비사 주지 삼중스님은 일본 교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 앞의 이총<사실은 비총(鼻塚, 코무덤)> 봉분에서 채취한 흙을 국내로 가져왔으나, 안장처를 찾지 못해 2년간 사찰에 봉안했습니다. 그러다 사천문화원의 도움으로 조명군총 옆으로 모시고, 귀 형상의 비석을 세워 영령을 위로해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조명군총과 이총을 구별 짓지 못하고, 오히려 이총으로 오인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조씨는 선진리성에 대한 안타까움도 더했다. 선진리성은 왜성(倭城) 형태이다. 통일신라 시기에 쌓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온 통양창성은 흔적만 어렴풋이 남았을 뿐 왜성으로 인해 상당부분 사라지거나 훼손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때 사적 제50호로 국가지정문화재였다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제274호)로 격하됐다.

    “몽골, 거란의 침입 흔적도 우리 역사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지역에 있는 왜성도 연구 대상으로 봅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우리 토성을 허물고 왜성을 쌓았다는데, 통양창성 성곽을 어떻게 무너뜨리며 새롭게 쌓았는지 밝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 학자나 70~80대 연구가들은 해마다 선진리성을 찾아와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그런데 국내 관광객들은 대충 눈으로 훑고 가 아주 대조됩니다. 저 같은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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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적지 관광을 위한 팁을 달라는 요청에 역시 문화관광해설사를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전국 어느 지자체든 해설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보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종태실지와 같이 해설사가 상주하지 않는 곳이라도 미리 요청한다면 인근의 해설사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관광안내판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설사와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조건으로 독서를 강조했다.

    “이미 고증된 기록을 전해주는 것보다는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해주는 것이 해설사의 임무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독서가 필수입니다. 인문학, 4차 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설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사천의 경우 항공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하는데,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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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규씨가 만해 한용운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곳(위)과 회갑을 맞아 기념으로 심은 황금공작편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관광해설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조씨. 세비를 받아온 공무원이었던 만큼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자세로 해설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 15일 근무 중 하루는 지역에 봉사하는 의미로 매달 하루, 1년간 12일치 수당을 적립해 설이 되면 가난한 이웃에 쌀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퇴직하고 보니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너무 깊더라고요. 현직 때는 ‘철밥통’, 퇴직 후엔 고액의 공무원연금, 심지어 고위직의 전관예우 재취업 등에 대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여론이 심각합니다. 퇴직 후 다양한 활동을 응원합니다만, 재능기부 차원에서 봉사활동도 병행하시길 바랍니다”라며 후배 공무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글·사진= 정오복 기자 obok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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