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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위르겐 힌츠페터-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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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사흘 앞두고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서는 특별한 의식이 열렸다. 그해 1월 타계한 한 독일인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을 안치하는 행사였다. 은퇴 후 독일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던 그가 2005년 광주를 방문했을 때,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5·18기념재단에 맡겨 놓았던 것들이다. 그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는 평소의 남편 말에 따라 그가 이국땅에 남겨놨던 손톱 등을 이날 묘역에 안치했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카메라맨으로 일본 도쿄특파원이었던 이 남자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주저없이 도쿄에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그는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경악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는 초기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을 기록한 영상물을 금속제 과자 상자에 숨겨 일본으로 가져갔다.

    ▼한국의 언론이 자의든 타의든 광주를 외면하고, 광주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을 때, ‘푸른 눈의 목격자’인 이 독일인은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리며 세계인의 이목을 한국의 광주에 쏠리게 한 인물이었다. 5·18민주화운동 6년 뒤인 1986년, 서울의 대학생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했던 그는 은퇴 이후인 2008년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대학생 재식은 광주에 온 도쿄특파원 피터 즉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세상에 널리 알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힌츠페터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야”라며 결연하게 약속했고 또 그 약속을 지켰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감시의 눈을 피해 보아 왔던, 지금도 많은 이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5·18 관련 영상물의 많은 부분이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촬영했던 결과물이다.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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