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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광복절 아침-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08-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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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 아침이 조용했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늦잠을 즐길 수 있었다. 지난해 오늘 같았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지, 거실 벽에 붙박이 확성기가 있다. 주민들에게 뭔가를 알려야 할 때에 쓰이지만, 여간 성가시게 구는 물건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공지를 하는 통에 관리사무소에 항의한 적도 있었다. 아주 긴급할 때, 즉 불이 나거나 수해가 날 때에는 화재경보기 등으로 주민들에게 경고하면 된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출입구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을 통해 알리면 된다. 굳이 가구 내 확성기가 필요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어떤 독일인은 한국의 아파트에 설치된 확성기를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일 정도라고 했다.

    무슨 국경일이 되면, 이 확성기는 아침부터 난리를 떤다.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달자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주민들을 재촉한다. 태극기를 달고 안 달고는 주민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왜 관리사무소에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관리사무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 근원을 추적하면 주민센터, 시청, 도청이 나오고, 더 파고들면 지금의 행정안전부인 행정자치부가 있었을 게다.

    그렇다고 내가 태극기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나라 밖 뜻밖의 장소에서 태극기를 볼 때,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태극기를 흔들 때에는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무슨 기념일이 되면 으레 집밖에 태극기를 내걸고, 이를 몸에 두르고 뛰어다닌다고 하여 태극기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게 강하다고 할 수 없다. 역으로,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다고 하여 그런 마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도 아니다. 국경일마다 게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마음의 차이가 아니라, 다느냐 안 다느냐 하는 딱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수년 전 영화 국제시장을 보다가 헛웃음이 나온 적이 있다. 길을 걷던 모든 이들이,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일제히 그 자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이른바 국기 하강식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성별이나 나이, 직업 따위에 상관없이, 태극기가 보이는 곳으로 몸을 돌려 제자리에 서 있거나 왼쪽 가슴에 손 올리던 그 장면 그대로다.

    당시 이 영화를 봤던 대통령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나라가 발전하고 그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면, 국민들이 앞장서서 지금도 일몰시간 애국가에 맞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정권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위기를 조장하고, 국민들에게 집단의식을 불어넣고, 때로는 공포정치를 편다. 70~80년대 저 시기가 그랬다. 그럴 때의 국기 하강식이 ‘소중한 공동체’인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위한 것일 수가 없다. 그런데도 국기 하강식이 좋다고 했으니, 과거의 영광이 재현되길 바라는 마음만 들켰다.

    아파트 확성기가 조용해진 올해 광복절 아침, 굳이 애국이니 뭐니 하며 떠들지 않더라도 제 할 일 묵묵히 하는 것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서 영 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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