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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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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지도력의 본질- 복거일(소설가·사회평론가)

  • 기사입력 : 2017-08-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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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집단의 지도자가 지닌 지도력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이 점은 국가와 같은 공식적 조직의 경우에 뚜렷하다.

    그러나 지도력은 현실 속에서 발휘되므로, 상황에 따라 지도력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컨대, 산행에서 병자가 나오면, 의학 지식을 가장 많이 갖춘 사람이 실질적 지도력을 발휘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 지도자도 장군들의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현실에선 이런 기술적 지도력(technical leadership)이 큰 몫을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정치 지도자가 내린다. 산행에서 생긴 병자의 구호 방식이나 산행의 지속 여부와 같은 결정들은 최종적으로 산행의 대장이 내린다. 전쟁에선 물론 정치 지도자가 최종 결정들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지도자의 선출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현 정권이 원자력 발전에서 발을 빼는 정책을 펴면서 발생한 문제들도 정치 지도자의 지도력과 관련되었다. 원자력 발전은 아주 어려운 주제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경제성, 기술 발전의 전망과 같은 여러 분야의 문제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것과 관련된 문제들은 전문가들만이 판단할 수 있어서, 기술적 지도력이 유난히 중요해진다.

    현 정권은 이처럼 깊은 전문적 지식들이 필요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정책을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문적 지식들이 필요한 일을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적이다. 그나마 국민투표를 통해 전체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정부가 선정해서 기구를 만든 뒤 그들의 결정을 대통령이 무조건 따르겠다는 얘기다. 그들이 무슨 권위와 권한으로 그런 복잡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인가?

    당연히,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은 지도력의 본질에 어긋난다. 전문가들이 포함되지 않은 기구에서 결정하니, 정치 지도자가 기술적 지도력을 받아들여 경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구의 결정을 대통령이 무조건 따르겠다니, 정치 지도자가 자기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론화 절차는 이처럼 겹으로 문제적이다.

    지금 나온 상황은 현 정권의 평지풍파다. 이미 오래전에 세워졌고 여러 정권들을 거치면서 다듬어진 산업 정책을 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 정권의 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현 정권에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나오게 된 데엔 물론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눈에 덜 뜨이는 요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둘레에 전문가들이 경악할 만큼 적다는 사정이다. 대신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다른 분야들에서도 평지풍파가 많고 민중주의적 접근이 흔해서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엔 이것이 한몫 단단히 하는 듯하다.

    정치 지도자 둘레에 전문가들이 부족한 현상은 두 경우에 나온다. 하나는 필요한 전문 지식을 잘못 짚은 경우다. 예컨대, 수질 악화는 사람들이 오염 방지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서 나온다. 올바른 처방은 필요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정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지식은 본질적으로 경제학 지식이다. 한강 수질이 나빠졌다는 걱정이 일자, 대통령이 연구소의 화학자와 면담한 적이 오래전에 실제로 있었다.

    또 하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경우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사실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임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처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현 정권의 원자력 발전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전문가’가 원래 환경 분야 전문가라는 얘기가 돈다. 전문가 부족에 대해 현 정권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복 거 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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