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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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청춘] 창원 버스커 장형석 씨

길에서 노래하다 노래에서 길 찾다
2010년부터 창원 길거리서 기타 들고 노래 불렀어요

  • 기사입력 : 2017-08-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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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열렸던 ‘창원 비어&맥주페스티벌’, ‘창원 원빈’으로 소개된 버스커 장형석(30)씨가 무대에 올랐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로 화제가 됐던 그를 알아 본 일부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는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로 열띤 공연을 펼쳤고, 땀에 흠뻑 젖어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날 그의 30분 공연비는 15만원이었다. 슈스케 후 1년, 많은 것이 변했지만 또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전국구 유명인이 됐지만 여전히 지역 가수로 고단한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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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석씨가 창원시 의창구 용지호수에서 버스킹(거리공연)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슈퍼스타 ‘창원 원빈’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탈락’이었다. 2016년 슈퍼스타K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합격’처럼 흘렀다.

    당시 길거리 버스킹 6년차인 그는 ‘가수’와 ‘가수 지망생’의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오디션에서 줄줄이 낙방했고 나이는 점점 서른에 가까워졌다. 그때 슈스케를 만났다.

    예선에서 심사위원이었던 에일리를 춤추게 한 그의 밝고 힘 있는 노래는 탈락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꽤 길게 방영됐고, 방송 후엔 많은 이들이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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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션에서 떨어진 직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커서 며칠간 노래도 못했어요.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죠. ‘원빈’이라는 호칭 때문에 얼굴만 검으면 원빈이냐며 욕(악플)도 많이 들었지만(웃음), 저를 알아 봐주고 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었어요. 그 결과 공연비를 모아 첫 앨범(밖으로 나와)도 발매했죠. 슈스케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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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방영된 슈퍼스타K 속 장형석씨.



    ▲가수라는 이름으로

    가수의 정의가 뭘까. 사전에는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 설명된다. 그에게 직업이 가수냐 물었다.

    “저요? 앨범을 냈으니 가수긴 한데… 아직 만족할 만한 가수는 아니에요. 제 자신이 인정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죠.”

    그는 노래로만 먹고산다.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대부분 지역 가수들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른 일로 돈을 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래만 한다”고 했다. 버스킹만 하던 시절에는 하루 끼니와 교통비 정도만 벌었고, 슈스케 출연 후에는 공연으로 최저임금 정도를 번다고 했다.

    “풍족하진 않지만 제 삶에 만족합니다. 혼자서 먹고 노래할 돈은 되니깐요.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기보다 현실에 충실하고 싶어요.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도 좋다고 믿거든요. 그러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후회를 안 할 것 같아요. 물론 저는 미디어로 얼굴을 알렸으니 운이 좋은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노래로만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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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치는 장형석씨의 손.



    ▲내 인생은 노래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가수를 꿈꿨다. 앉으나 서나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던 그의 첫 무대는 KBS ‘밀양 아리랑 가요제’였다. 2009년 열아홉 소년은 생애 처음 무대에 섰고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불렀다.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꿈을 향한 첫걸음이자 자신의 노래를 검증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대회 결과는 금상(2등)이었다.(1등은 슈스케 우승자였던 김필이었다고 한다.)

    이후 음악공부를 위해 창원 문성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지만, 제대 후 과가 없어져 서울종합예술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다 공부를 해보겠다며 창원대 사회학과로 또 편입했다. 그렇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해요. 노래를 부르면서 많이 웃는데, 일부러 짓는 게 아니에요. 완벽한 몰입이 이뤄져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꼭 노래로 성공하고 싶어요. 성공의 기준은 버스킹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버는 거죠. 제가 19살에 가요제 금상을 받고, 29살에 슈스케에 화제가 됐잖아요. 분명히 39살에는 대박 날거예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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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석씨가 아프리카TV를 통해 버스킹 공연을 생중계하고 있다.



    ▲평생 버스킹이 꿈

    가수 장형석으로 성공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그는 버스킹이라고 했다.

    “거리에서 관객들과 가까이 마주보면서 제 노래로 소통하고 싶어요. 버스킹을 할 때 관객들이 박수치고 호응해 주실 때 힘을 얻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한때는 일주일 내내 버스킹을 나가기도 했죠. 그래서 제가 많이 유명해지더라도 창원에서 계속 버스킹을 하고 싶어요.”

    그는 2010년부터 창원 일대에서 길거리 공연을 했다. 버스킹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 엠프도 없이 기타 하나만 들고 노래를 불렀다. 당시 지역에 그런 버스커는 10명도 채 안돼 서로 서로 알고 지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버스킹이 유행처럼 늘었고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아졌다.

    “지역에 버스킹 문화가 확산된 것은 너무 반갑지만 버스킹에 대한 다양한 문제도 터져 나오고 있어요. 새벽시간 버스킹 소음 문제로 방송뉴스에 보도되고 경찰에 신고를 당해 곤혹을 치르기도 했죠.(웃음) 그래도 버스킹 문화를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좋게 생각해요. 더 나은 환경에서 노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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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석씨가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하고 있다.



    ▲지역에서 노래하고 싶지만

    그는 곧 두 번째 앨범을 낸다. 기타리스트 최낙현(25·경남대 사범대)씨와 녹음을 앞두고 열심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두 앨범의 곡을 모두 직접 만들었다. 작사 작곡 모두 장형석이다. 그리고 그는 이 앨범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지역에서는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음악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부산은 음악 창작소 같은 공간이 있어요. 거기서 지역 음악가들이 앨범을 만들 수 있도록 장비나 비용을 지원해주죠. 경남은 그런 지원도 없을 뿐더러 지역가수 홀대도 심해요. 사실 진해 군항제 때도 대형 가수들만 초대하고, 지역 버스커들은 공간만 내어주고 아무런 지원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활동하는 지역 가수들의 공연비가 지나치게 낮은 것도 어려움 중 하나죠. 그래서 후배들이나 동료 버스커들에게 힘을 내고 같이 잘해보자며 격려하는 말을 선뜻 하기도 어려워요. 그래도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꼭 성공해서 지역 버스커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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