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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2 (6) 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 기사입력 : 2017-09-08 15: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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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의 부고를 읽은 건 독일에서였어. M이 죽던 날, 나는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한 그 땅에 출장차 며칠 째 머물고 있었거든. 카페나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잠깐씩 와이파이를 잡아 한국의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뉴스를 훑어봤지. 그때 M의 소식을 알게 됐어. 솔직히 말하면 말이야. 걍팍해 보이는 M의 얼굴이 뉴스 창에 떠있는 걸 보자마자 그의 죽음을 예감했었어. 이제 언론에 그가 얼굴을 내밀 이유는 M이라는 천재적이고도 독보적이며 불우한 존재의 '종결' 밖엔 없을 거라고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거든. 하지만 나는 그가 그러한 방식으로 떠나길 바라지 않았어. 그는 재론의 여지를 지닌 인물이었고, 때문에 언젠가 한번은 꼭 이 사회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은 후 평온하게 살다 자연사하길 바랐어. 나는 정말 그를 좋아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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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전 소설가 고 마광수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로 떠나기 전날 밤, 캐리어에 쌓인 옷가지 사이에 책 한 권을 던져 넣었었어. 웃지마. 책은… '노인과 바다'였어. 사실 아주 조금 비밀인데, 서른을 진작에 넘은 이 나이까지 나는 '노인과 바다'를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 한창 출장 채비를 하던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에서 어느 성우가 덤덤하게 그 책의 마지막 구절을 낭독하는 걸 듣고는 곧바로 서점으로 차를 돌렸지. 적어도 그때 내 귀를 홀렸던 몇 문장은 가슴을 둔기로 후려치는 것만 같았거든. 맞아. 청소년을 위한 필독문학전집 목록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책을, 나는 청소년 시기에 필독하지 않았어. 대신 M이 썼던 '즐거운 사라'나 '가자 장미여관으로' 같은 책들을 재밌게 읽었지. 그리고 이건 진짜 비밀인데, 역시나 음란물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J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나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도 그 시절에 읽었어. '노인과 바다'와 '즐거운 사라'가 어떻게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있느냐고 반문은 하지 말아줘. 한 권을 빼면 다른 한 권을 셈에 넣어 총량을 채우는, 지극히 산술적인 계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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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자타공인 모범생에 우등생이었는데. 졸업 때까지 입을 요량으로 엄마가 사입힌, 손등을 다 덮는 큰 교복을 코트처럼 걸치고 학교, 도서관, 집만 오가는, 존재 자체가 마치 보호색 같은 분위기를 풍겨 눈에 잘 띄지도 않은 그런 여자애였는데. 그런 어리숙한 소녀에게 M이라는 문제적 작가를 흠모하는 발칙한 면이 있었다니. 귀엽지 않아?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줘. 자극적인 성애 묘사나 긴 손톱을 지닌 생머리 여인을 사랑한 M의 독특한 성적 취향을 좋아했다는 말은 아냐. 나는 M이 놀랄 정도로 솔직해서 좋았어. 어렸던 나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쉽게 써서 좋았어. 사람들이 그를 외설적인 인간이라고 비난할 때, 나는 그들이 M이 쓴 책을 모두 읽어본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어. 그의 글에는 섹스만 난무했던 게 아니었거든.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빌려 쓰자면 그는 자아성찰, 사회비판, 자연친화를 노래한 문학가였는데. 어느 날 뉴스에서 M이 긴급체포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순간 뭐랄까, 우리가 속한 이 사회가 쓸쓸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지금이야 어째서 법이 창작의 영역을 재단하려 드느냐며 소심하게 댓글이라도 하나 달아볼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와 우리 사회는… 그럴 수가 없었어.
     
     캐리어 속에서 잠만 자던 '노인과 바다'가 세상 빛을 본 건 독일을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어. 맑은 물 위에 오리가 떼지어 떠다니고 저 멀리에 설산(雪山)이 보이는 호숫가 벤치에서 첫장을 열었지. 책 속에는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불우한 노인이 살고 있었어. 그는 허름한 판잣집에 살면서 밤마다 침대에 모로 누워 꿈을 꾸더라고. 아프리카 꿈을 말이야. 황금빛으로 빛나는 긴 해안과 드높은 갑(岬), 거대하게 치솟은 갈색 봉우리들. 아름답게 황혼이 내린 해안가에는 사자가 나타났지. 사자들은 새끼 고양이들처럼 순수하고 천진하게 해안을 노닐었고 노인은 그런 사자들을 사랑했어. 그러다 새벽이 오면 노인은 잠을 깨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어. 바다는 춥고 매서웠지만 노인에게는 허름한 셔츠 한 벌 뿐이었고 커피 한 잔이 그의 하루 끼니였어. 사람들은 고기를 낚지 못하는 노인에게 재수가 없다고 수군거리며 손가락질 했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 마노린이라는, 위대한 낚시꾼이 되려는 꿈을 꾸는 어린 소년 뿐이었어. 노인이 한창 바다에서 분투하는 동안 나는 잠깐 책을 덮고 노인의 꿈에 나오는 아프리카를 상상해봤어.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내 앞에 놓인 높고 험준한 설산을 바라보았어. 서서히, 유럽의 산 꼭대기가 아프리카의 색으로 물들고 있었어. 그 또한 노인의 꿈에 나오는 봉우리처럼 거대하게 치솟아 황혼을 맞이하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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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말미에서 번역자는 헤밍웨이를 이렇게 평가했어. '그는 지성과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라 보고, 가혹한 현실에 의연하게 맞섰다가 패배하는 인간의 비극을 간결한 문체로 힘차게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다' 어때? 정말 멋지지? 하드보일드 문학의 거장이라는 말을 이보다 더 하드보일드하게 쓸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라는 말을 단 한번도 쓰지 않으면서 말이야. 난 몇 번이나 그 문장을 소리내어 읽으며 이렇게 멋진 작가평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아주 잠깐 M을 떠올렸어. 좀 느닷없는 고백이긴 하지만 그 순간 가슴 한 쪽이 저릿하게 미안하고 서글펐달까. … 맞아. 이 글은 정말 재수없는 변명 투성이야. 그렇게 M을 흠모하면서도 그에게 팬레터 하나 써본 일 없이 그가 대중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걸 수수방관했던 익명의 독자가 쓰는. 그래서 난 이제부터 M에게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구절을 낭송해주려고 해. 내가 들었던 라디오의 성우처럼 아주 담담하고 덤덤하게. 그의 가슴을 둔기로 내려치듯이. 그것만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헌사라는 생각이 방금 전 머리를 스쳤거든. 부디 그가 사자꿈을 꿀 수 있도록. 부디 깨어나 용감하게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부디 그가 아프리카에 가닿을 수 있도록. 비록 나는 소년이 아니라 소녀이고, 그는 불우한 어부가 아니라 불우한 작가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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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없어.'
     노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너무 멀리 나간 것뿐이야.'
     노인은 바위 밑 좁은 자갈밭에 배를 댔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돛대를 어깨 위에 메고 언덕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노인은 비로소 자기 피로의 깊이를 알았다. 노인은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고기의 거대한 꼬리가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면서 작은 배의 고물 쪽으로 빳빳이 서 있었다.
     언덕 꼭대기까지 와서 노인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일어나지지 않았다.
     마침내 노인은 돛대를 내리고 일어섰다. 판잣집에 도착하기까지 노인은 다섯 번이나 쉬어야만 했다.
     판잣집에 들어가서 노인은 어둠 속에서 물병을 찾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두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얼굴을 신문지에 파묻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소년이 판잣집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을 때 노인은 죽은듯이 자고 있었다. 소년은 노인의 숨 쉬는 모습과 두 손을 보고는 얼굴을 돌려 소리내서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노인이 깰 때까지 앉아서 기다렸다. 마침내 노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놈들이 이겼어. 마노린. 놈들이 정말 나한테 이겼다니까.'
     '얼른 나으셔야 해요. 저는 아직 할아버지한테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아요. 또 할아버지는 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셔야 해요. 그런데 할아버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굉장히 고생했지.'
     '먹을 것과 신문을 가져올게요. 푹 쉬세요. 손에 바를 약도 사가지고 올게요.'
     소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발길이 닿는 산호초로 된 길을 걸어가면서 또 울었다.
     그날 오후 테라스에는 관광객 일행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빈 맥주 깡통과 죽은 꼬치어가 흩어져 있는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부인이 큰 꼬리가 달린 거대한 고기의 백골을 발견했다. 꼬리가 흔들렸다. 통풍이 항구 밖에서 줄곧 커다란 파도를 밀어 보냈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죠?'
     부인이 거대한 고기의 등뼈를 가리키면서 옆에 있던 급사에게 물었다. 그때 마침 고기의 뼈는 조류를 타고 밀려나가고 있었다.
     '티부론이죠. 상어의 일종이랍니다.'
     '어머나, 난 상어가 그렇게 잘 생기고 멋진 꼬리를 가졌는지는 정말 몰랐군요.'
     '응, 그래. 나도 몰랐어.'
     곁에서 부인의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길 위쪽 판잣집에서는 노인이 다시 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은 여전히 엎드려서 잤다. 소년이 그 곁에 앉아서 노인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1899-1961)/'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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