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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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 하수-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09-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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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법은 직설적이다 못해 거칠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말은 폭탄이다. 불발탄이 많긴 해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진짜 폭탄이 끼어있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이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불안은 배가 된다. 언제 폭탄이 터질지 노심초사하게 된다. 국제정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러한 불안은 당연하다.

    비록 미국 공화당 의원의 전언이었지만, 그는 일전에 한국인들을 극심한 불안에 빠트리는 말을 했다. 이 말은 듣는 이에 따라 분노를 유발하는 말이기도 했다.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게 아니다.”

    트럼프가 이 말을 언제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공화당 의원이 지난 1일 미국의 NBC 방송에 출연해 공개한 것으로 짐작해보면,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쏘아 올린 시점과 맞물린다. 대북 전쟁불가론을 잇달아 흘리고 있는 그로서는 한반도를 ‘거기’, 미국 본토를 ‘여기’라고 했을 게 틀림없다. 백악관 대변인마저 이 발언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라고만 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 말은 미 행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전쟁불가론의 실체를 인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면서, 군사 옵션을 심심찮게 거론하고 있다. 북한이 하는 것을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 곧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막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벌이려는 전쟁의 목적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런데, 자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과 전쟁을 치르면서 전장은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라고 한다. 미국이 불사하겠다는 전쟁이 결국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한국민의 희생 위에서 치러지는 셈이다. 비록 한국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서로 동맹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남과 북이 싸워도 전장은 한반도이고, 미국과 북한이 싸워도 전장은 한반도가 되는 꼴이다. 그 가능성이야 극히 낮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상상 속에서라도 떠올려서는 안 된다.

    현대의 전쟁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철퇴로 내리치고, 화살을 쏘는 시대의 싸움과 판이하다. 이라크나 시리아, 아프카니스탄을 보면 현대전의 양상을 어림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 밀도가 극히 높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이라크 등에서의 전쟁과 비교할 수 없는 참상을 불러올 수 있다. 아무리 현대의 전쟁이라고 해도 스마트폭탄으로 특정 표적만 처리하고 깨끗이 끝나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던가. 그 싸움이 전쟁이라면, 전쟁의 장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라면 더더욱 말려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평소에 습관적으로 이러한 속담을 인용하면서 말의 성찬을 벌인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안위가 걸린 문제에 맞닥뜨려서는, 전쟁을 말리면 ‘안보 무능’이라며 쏘아붙인다. 안보가 뭔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안보 하면 군사력, 무력, 전쟁만 떠올린다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바로 그 하수(下手)다.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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