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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실질문맹- 이상권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7-09-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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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자는 인류 최고 발명품이다. 기록의 불변성과 연속성에 기인한다. 대중에게 보편화하기 이전엔 권력과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이집트, 중국 등 초기에 문자를 사용한 대제국에서는 소통의 매개가 아니라 지배세력 편의를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삼국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사용한 이두(吏讀)에 ‘벼슬아치 리(吏)’자를 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자는 시대 권력을 담은 도구로 소수 권력 집단의 지배 수단이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권력 나누기다. 특수 계층의 지배 도구를 일반인에게 제공한 훈민정음 이데올로기는 문자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다. 지배층의 거센 반발은 예고된 순서였다. 그들은 난해한 한자를 사용하며 평민과 천민의 문자 습득을 제한해 우매한 대중을 양산하고 지배구조를 공고히 했다. 대외적으로는 사대주의를 존립 근거로 삼았다. 중국과 언어적으로 동질성이 없는데도 그들의 문자를 사용하며 공동체로 인정받고자 했다.

    ▼사회가 분화하면서 문자는 집단과 계급의 지식 재분배 매개체로 자리매김했다. 지배계급은 후손에게 재산과 권력 못지않게 문해(文解) 능력 배양을 강조했다. 피지배 계급 역시 역경을 무릅쓰고 문자의 세계에 뛰어들기를 갈망했다. 피지배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강한 확신에서 비롯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가 학문이라는 신념은 전통적으로 신앙에 가깝다. 갈수록 그 믿음과 괴리가 커지는 현실이지만 바닥 정서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글을 읽는데도 내용을 이해 못하는 실질문맹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통계다. 전문가들은 독서량 부족을 꼽는다. 독서는 타인의 언어를 자기 언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독해력은 곧 사고력이다. 요즘은 대부분 책이 아닌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통해 인스턴트형 정보를 습득한다. 사고를 통한 내면과 대화가 단절된 시대다. 문자 보편화의 역설이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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