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거부의 길] (1188)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④

“무슨 일로 바쁘기는…”

  • 기사입력 : 2017-10-09 07:00:00
  •   
  • 메인이미지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 보였다.

    “서울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여자들을 잡아다가 사창가에 팔아. 그런 곳에 팔려간 여자가 뭐하는지 알아? 몸뚱이 팔아. 너도 팔려가고 싶지 않으면 내 손 놓지 마. 알았어?”

    황민우의 말에 사월은 깜짝 놀라 그의 손을 꽉 잡았다. 황민우가 그때서야 빙그레 웃었다.

    마장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신설동으로 갔다. 서울은 번화하여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큰길에는 차들이 꽉 차 있었고 가솔린 냄새 때문에 속이 매슥거렸다. 황민우는 동대문에서 가까운 신설동의 산비탈 판잣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하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취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서울에 올라온 첫날이니까 중국음식 먹자.”

    황민우는 사월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었다. 자신은 배갈까지 한 독고리를 주문하여 마셨다.

    “아부지가 차비 없애면서 굳이 내려올 필요없다고 하셨어. 충주에 내려오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래.”

    사월은 충주에서 가지고 올라온 등록금과 하숙비를 황민우에게 건네주었다. 황민우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래. 그러잖아도 바빠서 내려갈 시간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

    황민우가 돈 봉투를 받아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돈을 받자 안절부절못했다.

    “오빠, 바빠?”

    “그럼 대학생이 한가하겠냐?”

    “무슨 일로 바쁜데?”

    “무슨 일로 바쁘기는… 학생이 공부밖에 바쁜 일이 또 있냐?”

    “대학교는 방학 안 해?”

    “방학이라고 공부 안 해? 너도 대학생 되어 봐라.”

    “바쁘구나.”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바빠도 내가 너 서울구경은 꼭 시켜 줄 테니까.”

    황민우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눈이 때때로 사월의 몸을 음침하게 더듬고 있었다. 사월은 점심을 먹은 뒤에 황민우의 자취방으로 갔다. 자취방은 더럽고 옹색했다. 황민우의 자취방을 둘러본 사월은 실망했다.

    “서울은 물가가 워낙 비싸. 이런 방도 구하기 힘들어.”

    황민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사월에게 말했다.

    “나 좀 나갔다가 올 테니까 편하게 있어라. 오늘은 내가 일을 보고 내일은 서울 구경시켜 줄게.”

    황민우는 사월을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갔다. 사월은 방에 혼자 남게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울까지 올라온 일이 꿈만 같았다.

    날씨가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서울은 더욱 더운 것 같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