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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남한산성 - 김희진 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17-10-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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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7년 1월 30일 한강 상류 나루 삼전도. 조선 16대 왕 인조가 9층 단상 위 청나라 태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청 기병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파천한 후 피 말리는 45일을 보낸 직후였다. 언 땅이 녹는 냄새가 나는 흙먼지 속에 코를 박은 인조는 3배 9고두례 (三拜九叩頭禮·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했고 청에 군신관계를 맹세한다. 이것이 바로 조선 역사의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된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이다.

    ▼삼전도의 굴욕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이 추석 연휴에 개봉됐다. ‘최단시간 100만 관객몰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된 영화는 작가 김훈이 10년 전 펴낸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인조 14년 1636년 12월 청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간 임금과 조정 대신, 군사와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 절대우위의 적으로부터 오는 공포 속에서 보낸 45일간의 결사항전을 담고 있다.

    ▼소설이 그랬듯 영화 속 볼거리 역시 단연 두 충신의 불꽃 튀는 설전이다. 청에 굴복하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척화파 김상헌과 화친해 우선 삶을 구하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립한다. 대신들의 설왕설래에 조선의 왕은 죽음의 두려움을 침묵 뒤에 숨기고 그 사이 병사와 민초들은 쓰러져 간다. 스크린 건너편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은 혀를 찼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 팩션(fact+fiction)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소설을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 볼 만했다’ 등의 감상평 대신 씁쓸함이 몰려왔다. 역사에 기록된 삼전도의 굴욕은 380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껴 녹록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2017년 현재 한반도의 현실과 사뭇 닮았다. 더 참담한 것은 약한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하는 비극이 과거완료형이나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미래형이 되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희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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