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6일 (수)
전체메뉴

‘빨리빨리’는 병인가, 문화인가? - 공창석(경남대 초빙교수 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 기사입력 : 2017-10-10 07:00:00
  •   
  • 메인이미지


    ‘빨리빨리(BalliBalli)’. 오늘날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 중의 하나이고, 바야흐로 한국인의 민낯을 드러내는 용어가 되었다. ‘빨리빨리’는 비단 일상생활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누구는 한국병이라고 자탄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예찬하기도 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고쳐야 할 몹쓸 병인가, 아니면 계승해야 할 좋은 문화인가?

    근세에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느렸다. 구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조선을 ‘은둔의 나라’ 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렀다. 그만큼 느려터진 사회였다. 따라서 결코 ‘빨리빨리’를 고유문화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빨리빨리’는 일종의 병인가? 대답을 위해서는 ‘빨리빨리’가 내포하고 있는 함의(含意)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먼저 생각할 것은, ‘빨리빨리’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산업현장과 분업노동 등에서 보이는 빠른 행동이다. 이는 산업화의 정도와 경제구조의 특성에 의해서 속도의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으로 가치판단의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공사장의 빠른 작업은 안전사고를 유발해서 문제가 되나, 서비스 분야의 빠른 서비스는 권장할 만한 것이다.

    둘째는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보이는 빠른 행동이다. 예컨대 자동차 앞지르기, 비행기 탑승장에서 미리 서서 기다리기, 새치기 따위이다. 이에는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폐 안 끼치며, 체면을 차리는 행동을 사람다운 이성적 행동이라 한다. 반대의 경우는 사람답지 못한 비이성적 행동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빨리빨리’에 비이성적 뉘앙스가 담겨있는가? 그렇다. 남에게 폐를 끼치든 말든, 체면이야 구기든 말든, 무작정 빨리한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달리 말하면 ‘빨리빨리’가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사람답지 않는 비이성적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언제 ‘빨리빨리’가 생겼느냐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고도경제성장을 구가하던 1970~1980년대에 나타났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에 우리사회의 고질병이었던 ‘코리안 타임’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주지하다시피 고도경제성장은 고소득 상류층을 형성시켰다. 당시에 장사나 사업으로 떼돈을 번 부자가 우후죽순처럼 수없이 생겨난 것이다.

    대한민국은 양반봉건체제가 완전히 붕괴된 평등사회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새로운 상류층의 등장은 평등을 깨는 큰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계층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사회분위기가 배금사상으로 물들어 갔다. 새로운 상류층에는 안하무인의 졸부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은 이익마저 앞다투었고, 재력을 과시하며 천박한 비이성적 ‘빨리빨리’ 행동을 무시로 일삼았다. 그것이 ‘빨리빨리’ 풍조를 조장하고 부채질해 나갔다.

    한편 가난한 이웃이 상류층으로 변신하는 현실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졸부를 경원시하면서도 내심은 부를 챙기려고 조바심쳤다. 어쩌면 그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하듯이, 상류층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 따위의 표출이었다. 그런 와중에 안타깝게도 남을 배려하고 폐 안 끼치며, 체면을 차리는 전통미덕은 사라져갔다. 이것이 ‘빨리빨리’의 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떻든 비이성적인 ‘빨리빨리’는 조속히 치유해야 한다. 물론 어쭙잖게 문화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불식시켜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 고쳐지겠지 하며 미뤄두면 부지하세월이다. 모두가 이성을 가꾸고 이성적 행동에 신경을 쓰자.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한다.

    공창석 (경남대 초빙교수·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