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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복지에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들 -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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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곧잘 ‘퍼주기’ ‘무상’ ‘포퓰리즘’이라는 말과 같이 쓰인다. 이런 수식어들은 복지가 나의 곳간에 든 곡식을 적선하듯 남들에게 퍼주는 것,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물건을 공짜로 내주는 것, 원칙을 내팽개치고 대중의 요구에 끌려가는 것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복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말들이다.

    복지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이다. 아무리 고소득자고 자산가라 해도 이미 국가의 복지시스템 내에 들어와 있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복지에 퍼주기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자기비하와 다르지 않다. 그 자신이 동냥질을 통해 복지정책들을 받고 있다고 하는 꼴이다.

    무상이라는 말이 복지의 접두어로 쓰이는 것도 이상하다. 무상은 흔히 무상급식, 무상복지라는 형태로 쓰이고 있다. 초·중·고교에서 수천원짜리 밥을 1원도 안 받고 주고 있으니 무상급식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세금을 많이 내는 이도 있고 적게 내는 이도 있겠지만, 이 학생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낸 세금으로 급식을 제공받는다.

    설령 저소득자가 부담하는 세금 총액이 고소득자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해도, 이들 저소득자의 ‘보이지 않는 희생’ 위에서 이 사회가 유지·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금 적게 낸다고 타박해서는 안 된다.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도 있었지만, 이들은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하며 이 사회의 존속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OECD 회원국에 걸맞은 복지의 대상이 되도록 하자는 데 딴지를 걸 이유가 없다. 이들이 행복해야 다른 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떤 정책을 놓고 이게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하며 구분 지을 이유도 없다. 포퓰리즘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그 자체가 나쁘고 지양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여 지지를 얻으려는 것이 포퓰리즘 아닌가. 그래서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포퓰리즘은 사악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첫 번째로 꼽는 인물이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다. 그는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남미이지만 브라질의 룰라는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현금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폈다.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를 통해 빈곤율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흔히 UN 산하기구가 산출하는 세계행복지수를 바탕으로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한다. 짐작하는 대로 대표적인 복지국가들인 북유럽 나라들은 모두 10위 안이다. 그동안 높은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은 여전히 50위 밖이다.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지수도 올라간다는 데 동의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수준을 여하히 끌어올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재원이 부족하면 증세를 논의하면 된다. 복지에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여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칠하는 것은 복지 수준을 높일 의향이 없다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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