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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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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기사입력 : 2017-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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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욱(희연 호스피스클리닉 간호주임)


    1980년대 미국에서 시행한 성교육은 그 시절 금기된 성과 왜곡된 성을 합리적인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의 그릇된 성 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감추고 쉬쉬해 왔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냄으로써 감추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죽음과 성에 대해 오픈마인드가 아닌 클로즈마인드를 가져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거나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존엄사 판결)이 발판이 되어 최근 웰다잉 법(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많은 사회적인 공론을 일으켰지만, 죽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호스피스 클리닉에서도 ‘환자가 충격을 받을까봐, 병세가 더 악화될까봐’ 환자에게 병명을 알리지 않는 보호자들이 간혹 있다.

    우리는 보호자를 설득해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주길 권유하지만 끝내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아쉬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반면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 환자에게 병명을 알리는 경우 보호자들이 걱정하던 바와 다르게 자신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어떤 말로 병명을 알려드릴까?’ 전전긍긍하던 우리의 마음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인정이다.

    앞의 네 단계를 거쳤다면 죽음을 인정하는 마지막 단계가 온다.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기 전까지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친다면 비교적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평소 자신의 살아온 삶과 죽음에 대해 거부감 없이 이야기하던 환자가 어느 날 “이제 나는 하늘로 갈 준비가 됐어요. 좀 더 베풀면서 살지 못한 게 후회가 되네요. 빨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며칠 뒤 웃는 얼굴로 임종한 모습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죽음’이다.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항상 나를 괴롭혀 왔던 수많은 고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의 시작점은 사랑, 배려, 용서, 나눔이며 후회 없이 살다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변화의 종점이 될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모든 이가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기를 바라며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삶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 대신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당신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김동욱 (희연 호스피스클리닉 간호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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