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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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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194)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⑩

“삼월이보다 좋네”

  • 기사입력 : 2017-10-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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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빠가 있어?”

    남자가 윤사월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측은하게 바뀌어 있었다. 윤사월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 찬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다. 윙윙대는 바람소리에 창문이 덜컹대고 흔들렸다.

    윤사월은 자신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나도 여동생이 있는데… 서울에 돈 벌러 왔다가 연락이 끊겼어. 양동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양동은 사창가였다. 윤사월은 배가 부르자 졸음이 밀려왔다. 거리를 떠돌면서 으레 하는 일이 음식을 얻어먹고 잠을 자는 일이었다. 잠에 취하면 사내들이 치마를 들쳐도 백치처럼 웃기만 했다.

    “이름이 뭐야?”

    “사월.”

    “후후. 삼월이보다 좋네.”

    남자가 웃자 윤사월도 배시시 웃었다.

    “갈 곳이 없어? 왜 구걸을 하는 거야?”

    남자가 윤사월에게 물었다. 윤사월은 구걸을 하면서 머리가 몽롱했다. 왜 자신이 구걸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고향도 잊고 어머니도 잊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도 잊었다. 구걸을 하면서도 여러 남자들이 그녀를 스쳐 갔다. 많은 남자들이 먹을 것을 주고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쳤다.

    마치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었다. 허우적거릴수록 그녀는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갔다.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흙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잣을 파는 사람이었다. 잣은 귀해서 한 가마에 당시 가격으로 20만원이나 했다. 남자들 봉급이 2~3만원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남자는 몇 년 전 아내가 죽어 혼자 살고 있었다. 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나하고 같이 살래?”

    하루는 남자가 물었다. 윤사월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밖에서 구걸을 다닐 수 없었다. 그해는 유난히 추웠다.

    “그럼 좀 씻어야 돼.”

    남자가 말했으나 윤사월은 씻지 않았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면서 거의 씻은 일이 없었다. 남자가 부엌에서 물을 데웠다.

    “씻어.”

    남자가 수건과 비누를 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손발을 씻고 세수를 했다. 몇 년 만에 맡아보는 비누향기가 황홀했다.

    “에이 머리도 감아야지.”

    남자가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녀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왜 우는 거야?”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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