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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15) 가야토기(伽倻土器)

흙그릇에 담긴 가야인의 숨결과 체취
낙동강 서쪽지역서 주로 출토
독창적이고 다양한 형태 특징

  • 기사입력 : 2017-10-2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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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500년 가야역사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가야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옛 가야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해법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가야역사는 좀처럼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또한 가야가 남긴 유물 가운데 가야역사를 올바르게 전해 줄 수 있는 서적이나 명문(銘文)도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 가야지역 옛 땅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기존 문헌사료들이 빠뜨린 가야사의 공백을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게 됐다. 가야의 유물 가운데 가야인의 생활상과 시대 변천과정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알려주는 토기(土器)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가야지역 고분 등에서 출토되는 토기야말로 가야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인류가 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00∼6000년 전인 중석기시대 말기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6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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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가야시대 토기와 화살통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사진은 대성동고분군 발굴 결과 공개./경남신문DB/


    ▲낙동강 서쪽지역에서 주로 출토

    토기는 보통 흙으로 빚은 그릇 중에서 그릇 면에 초자질(硝子質)의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토기는 쉽게 깨어지고 끊임없이 만들어져 그 순환이 매우 빠르다. 토기는 그만큼 생활 양태나 미적 감각의 변천이 다른 어떤 물건보다 잘 표현돼 있다.

    가야토기는 지리적으로 낙동강 서쪽, 즉 경상남북도의 서반부로부터 출토된 토기를 말한다. 가야토기는 비교적 세력이 컸던 가락국의 김해와 대가야국의 고령을 중심으로 한 가야유적에서 대량으로 출토됐다. 가야토기는 흙의 선택과 표현감각에서 신라토기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야토기는 신라토기보다는 고식적이다. 신라토기보다 덜 장식적인데다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 독창적인 가야토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야토기는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해 가야인들의 뛰어난 창의성과 지혜를 엿보게 한다.

    가야토기는 대체로 1∼3세기경의 연질토기 (軟質土器)와 4∼6세기경의 경질토기(硬質土器)로 구분한다. 연질토기는 김해 회현리, 진해 웅천, 양산 등의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적갈색 토기 또는 회백색 토기들이며 경질토기는 대부분 지배계급의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들이다. 이때는 환두대도라든지 왕을 상징하는 유물이 같이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분만 발굴하면 가야토기가 나올 정도로 옛 가야지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은 △생활주변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가소성(可塑性)이 있어 성형(成形) 조정(調整) 시문(施文) 등의 작업이 용이하고 △굽는 방법에 따라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어 질 형태 색깔을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만들기가 쉽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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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마인물상 토기(국립경주박물관).



    ▲연질토기와 경질토기

    가야토기는 구운 분위기에 따라 적갈색 연질토기와 도기와 비슷한 회청색 경질토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연질토기는 조개더미와 무덤 그리고 토기가마터에서 주로 출토된다. 경질토기는 1000도 이상의 고열로 구워진, 도기(陶器)와 유사한 토기다.

    가락국의 본거지였던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가곡마을의 양동리고분군(良洞里古墳群:사적 제454호)에서 4차례에 걸쳐 발굴한 총 4032점의 유물가운데 토기가 1200여 점이나 된다. 지난 1996년 6월 아라가야의 본거지였던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에서 발굴한 화염형투창고배(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그릇) 등 토기류 90여 점과 1996년 5월 대가야의 본거지였던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동고분군에서 발굴한 1000여 점의 가야토기는 가야문화뿐만 아니라 각 시대별 사회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밖에 대표적인 경질토기인 창원시 의창구 삼동동에서 발굴된 세로띠잡이잔(把手附盞:높이 10.2㎝ 입지름 8.0㎝ 부산여자대학박물관 소장) 등을 비롯한 각종 토기가 옛 가야지역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이처럼 가야토기는 가야인의 뛰어난 공예수준뿐만 아니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그러나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옛 가야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가야토기들은 뛰어난 질과 형태 문양, 그리고 실용성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의한 역사적 뒷받침이 없어 추측과 유물 확인만으로 ‘가야인’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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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지역에서 발굴된 가야시대 각종 토기들.



    ▲이형토기(異形土器)

    사람의 형상뿐 아니라 동물, 각종 생활용구를 본떠 만든 토기를 토우(土偶)라 한다. 고대의 토우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하나의 우상으로,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품으로 제작됐다. 가야토기 가운데 집토기(家形土器), 짐승토기(動物土器), 토우(土偶) 등 특수한 형태를 갖춘 토기를 이형토기(異形土器)라 한다. 기마인물형, 배모양, 신발모양, 오리모양 등 이러한 이형토기는 조형성이 뛰어나 가야인들의 뛰어난 예술감각을 엿보게 한다.

    함안 말이산 34호분에서 출토된 오리모양의 토우는 몸속이 비었으며 꼬리부분에는 둥근 구멍이 위로 뚫리고 한가운데도 아가리가 뚫려져 있다. 가야시대 이 오리토우가 함께 묻힌 이유가 궁금하다.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書 東夷傳)에 “변·진한에서는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낼 때 큰 새 깃을 함께 묻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혼이 하늘나라로 날아가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오리는 죽은 자의 승천을 위한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동물 형상의 토우들은 가야인들의 종교관과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그 토우엔 가야인들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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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들.



    ▲기마인물상(騎馬人物像)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기마인물상 토기는 가야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높이 23.2㎝, 폭 14.7㎝, 밑지름 9.2㎝ 크기로 국보 제275호로 지정돼 있다. 나팔 모양으로 된 굽다리접시(高杯) 받침 위에 직사각형의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를 올려놓았다.

    국내에서 말 갑옷이 나온 13군데의 유적 모두가 옛 가야땅이다. 이들 갑옷과 투구, 말 갑옷, 또 따른 여러 가지 철제무기류의 출토는 가야에 기병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하게 마구를 갖춘 말 위에 올라탄 인물을 형상화한 기마인물형 토기는 큼직한 코와 찢어진 두 눈, 유별나게 넓적한 귀를 갖고 있는 인물상에서 가야인의 높은 기상과 체취를 느끼게 한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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