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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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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흔들리며 피는 꽃- 황긍섭(경남도진산학생교육원 원장)

  • 기사입력 : 2017-10-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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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식 때 축사 대신 돌아가면서 듣는 부모님 말씀들은 대개 비슷한 스토리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 엄청 착하였고, 부모 말도 잘 들었는데…’로 시작해 ‘내가 잘 보살펴 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끝맺으면서 눈물을 보인다.

    이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쉽냐고 물어 보면 대개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다’라고 말한다. 또 대체로 매사에 소극적이며 자신감도 없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첫 만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들과 아이들은 바뀌어 간다. 은실(가명)이도 마찬가지다. 7세 전후로 부모를 잃고 외조부님 슬하에서 생활하던 아이였는데, 가족 내 종교 갈등, 폭력 등으로 상습적으로 가출하던 아이였다.

    학교 밖 청소년들과 어울려 그룹 홈 생활을 하던 중 중학교 3학년 1, 2학기를 진산에서 보냈다. 은실이의 진산 생활은 또래의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림, 어른들과의 부적절한 이성 교제, 음주, 지나친 흡연, 기숙사 무단이탈 등으로 우리와 늘 긴장관계였다.

    불안정한 교우관계로 아이들 사이에 자주 풍파를 만들었고, 때로는 불안정한 정서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은실이는 우리들에게는 늘 거대한 벽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해 무너질 수 없는 벽이었는데 어느 날 그 벽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은실이가 변한 것이었다. 지금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은실이를 보면 과거의 은실이를 상상할 수가 없다.

    무엇이 은실이를 바꾸었을까? 부모들이 첫 만남에서 했던 말처럼 착하고 사랑스럽던 어린아이를 되살린 진산의 철학이 그 답이라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은실이 마음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꽃씨가 자랄 수 있게 지지하고 기다려 주는 것밖에 없었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환경을 어린 중학생이 감당하며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던 것이다. 비난하지 않았고, 지켜보면서 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같이 아파했다. 또한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고, 단지 꿈꾸게 했다. 철이 조금 늦게 든다고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지금 불고 있는 세찬 바람을 이겨내면 언젠가는 꽃을 피울 은실이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황긍섭 (경남도진산학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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