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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청춘] 섬에서 섬을 그리는 20대 화가 김서진 씨

남쪽바다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느린 꿈을 그려요

  • 기사입력 : 2017-10-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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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진 작가가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섬에서 나고 자라 줄곧 섬 밖을 꿈꿨다. 그래서 섬을 떠났지만 예상과 달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곳은 너무나 각박하고 바빴다. 그림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나답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입을 댔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돈벌이는 해결 못할 갈증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눈치보지 않고 하자’고. 그렇게 김서진(26·여)씨는 시골 섬의 화가가 됐다.

    참 별나다 싶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스물여섯, 그림 그리고 섬. 일반적인 조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마주한 그는 이 세 단어와 한 치의 틈도 없이 조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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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진 작가가 그린 작품 '가벼운 침묵'.

    “그러고 보니 한 번도 그림을 놓은 적이 없네요.”

    서진씨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그림을 좋아했고, 그렸다. ‘화가’는 막연하지만 변하지 않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이 멈춰선 시점도 있었다.

    “어렸을 땐 화가가 되는 길은 입시로 미대를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포기하자 했죠. 입시는 형편상 부담이었거든요. 학원을 다니기엔 제가 사는 곳은 너무 시골이어서 한참을 나가야 했고, 비용도 적지 않았어요. 말씀은 안 하셨지만 부모님도 부담스럽지 않으셨을까요.”

    대전에 있는 배재대 영상예술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림과 멀어지나 싶던 걱정은 기우였다. 영상예술과는 크게 사진, 영상, 일러스트로 분야가 나뉘었고 그는 일러스트를 택했다. 또 다른 그림을 시작한 계기였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나다워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사람들 속의 나, 세상 속의 나라면 그림을 그릴 땐 오롯이 독립된 존재 같은 거죠.”

    대전에서의 생활은 그림을 그리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학생이다 보니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용돈을 집에서 지원받았고, 과제가 곧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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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환경에의 적응은 머지않아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섬에서 꿈꿨던 섬 밖처럼, 대전에서는 서울을 꿈꿨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가길 원하는지 궁금했다.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돈을 벌면서 그림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결론적으로 탈락이었죠.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가 의류매장에서 1년여 일을 했는데 전시를 알아보고 그림 작업, 그리고 돈까지 벌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었어요. 의지의 문제겠지만 힘에 부쳤죠.”

    눈을 뜨면 출근했고 퇴근할 때면 해가 졌다. 돈은 벌었지만 이외의 삶이 없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면 그중 그림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러던 중 서진씨는 ‘환상의 나라’ 인도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곳이었다.

    “천계영 작가의 ‘DVD’라는 만화책이었는데 거기서 ‘세상에 있었다가 떠난 환상들이 사는 곳, 인도’ 이런 내용이 나와요. 그래서 가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제가 인도를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던 아는 동생이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마침 선교활동으로 인도를 가자고 제안을 해서 받아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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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진 작가가 그린 작품 '낯선 벽'.

    지난해 7월 그렇게 그는 인도에 떨어졌다. 그림 그리고 삶의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그림체도 찾고, 제 자신도 찾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원했어요. 결론적으로 7개월간의 인도는 제 삶에 빠질 수 없는 페이지가 됐죠.”

    캘커타, 비하르, 자르칸트.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그뿐이었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빠르지 않아 휴대전화는 쓸모가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인터넷 서핑이든 수다든 한국이었다면 했을 의미없는 할 일이 사라지자 인도가 보이고 사람이 보였다. 그곳에서 서진씨가 느낀 건 ‘별게 별게 아닌 게 되는 곳’이었다.

    “바쁠 것도 정해진 답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실수를 해도 꾸짖지 않고 괜찮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도 배웠어요.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그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스스로 걷는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잖아요. 근데 그 가운데 제가 천천히 그림을 그리면서 살려고 하면 박탈감이 느껴질 것 같았어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도 같았구요. 인도에서 저는 천천히 살아가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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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씨에게 인도는 섬과 비슷했다. 막연히 꿈꾸던 섬 밖에서 지친 그는 비교적 느린 시골 섬으로의 회귀를 바랐다. 그는 인도에서 그린 그림을 모은 ‘섬머-타임’ 전시에서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사랑스럽게 느린 인도의 리듬. 그곳에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꿈에서 깨보니 세계 기준 시보다 한 시간 빨리 하루를 열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고 느껴졌다. 한 템포 빠르게, 두 템포 느리게 내가 태어난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다시 찾은 내 리듬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올해 1월 서진씨는 섬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지 얼마 안돼 인도에서의 그린 그림은 남해에서 빛을 봤다. 본격적인 시골 섬 작가로서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지금 상주작가로 일하고 있는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프로젝트’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친구가 당시에 돌창고프로젝트에서 일을 했어요. 여기는 둘째주 토요일마다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입국 3일째 되는 날 열리는 마켓에서 제 인도그림을 엽서로 팔아보자는 구상을 하게 됐죠. 어쩌다 보니 14점 정도로 그 공간에서 임시 전시도 하게 됐는데, 프로젝트 대표님이 제대로 전시를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해서 2월에 섬머-타임이란 주제로 전시를 했어요.”

    그는 앞으로도 섬에 머무를 생각이다. 비교적 느리고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꾸준한 그림 작업과 전시를 위해 얼마 전부터는 ‘시골서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경제활동과 문화인프라 보장을 위한 프로젝트’인 돌창고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제활동도 시작했다.

    “우선 돈을 생각했다면 그림을 안 했을 거예요. 그렇다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우선순위가 그림일 뿐이죠. 지금은 절 키우는 단계라 생각해요. 저는 저를 믿고, 끝은 행복일 거라 믿으니까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글·사진=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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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진 작가가 그린 작품 '누군가에겐 소중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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