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가고파] 작아지는 생각 주머니- 강지현 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7-10-26 07:00:00
  •   

  • 학교에서 배웠다. 정답은 단 하나라고. 틀리면 그걸로 끝. 과정은 불필요했다. 12년 교육은 수능을 향해 달렸다. 수업시간은 선생님 말씀과 필기로 채워졌고, 나는 암기로 획득한 등수로 존재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은 대학 때도 계속됐다. 시험은 주관식으로 바뀌었지만 한 번도 나의 생각을 묻지 않았다. 배운 내용을 외워 옮기는 능력이 곧 학점이었다. 질문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생각 주머니는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서울대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서울대 우등생 87%가 꼽은 좋은 학점의 비결은 ‘교수 말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었다. 자신과 교수의 생각이 다를 경우 본인의 생각을 포기한다고 한 학생은 90%에 달했다. 학점을 위해 비판적 사고를 버리는 것이다. 대학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어른’으로 길들이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의 학생들은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는다. 철학부터 수학, 과학, 역사 등 다양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간다. 프랑스의 교육도 특별하다. 200년 전통의 대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는 모든 문항이 주관식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시험에 철학 과목이 들어 있다. 정답이 없는 시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 문제도 풀 수 없다.

    ▼스마트폰을 열면 지식이 쏟아지는 시대다. 이제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지식을 파악하고 활용하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없인 불가능하다. 흔히들 말한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지금의 대학은 바코드를 찍어내는 것처럼 비슷한 스펙,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저 똑똑하고 온순한 양들을 길러내고 있다.” 예일대 윌리엄 데레저위츠 교수의 비판을 되새겨야 할 때다.

    강지현 편집부 차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강지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