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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20여년간 창원 웅동2동 자율방범대 이끈 김재석 대장

“동네 일이 내 일… 1년 365일 봉사하다 오늘에 이르렀죠”
20대 때부터 자율방범대 활동
1999년 웅동2동 방범대 재창립

  • 기사입력 : 2017-10-2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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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대원 입장에서는 힘들죠. 고집도 세고, 다른 곳은 주중에만 활동하는데 우리는 주말도 하고, 명절 때도 하고….”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 자율방범대 김재석(63) 대장과 함께 자율방범대원으로 활약 중인 김수삼(48)씨의 말이다. 김씨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개 조 중에서 월요일 방범활동을 책임지는 1조 조장이다.


    ◆오후 7시= 김 조장의 말대로 웅동2동 자율방범대는 1년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용원중학교 맞은편 용재공원 입구에 있는 자율방범대 초소로 대원들이 출근한다. 이때부터 자율방범대의 일과가 시작된다. 김재석 대장은 30분 전부터 초소에 들러 하루를 준비한다.

    오후 8시부터 도보순찰을 나간다. 3인 1조로 웅동2동 곳곳을 누빈다.

    오후 9시. 용원고등학교 1~2학년생들이 하교하는 시간대다. 방범대원들도 분주해진다. 순찰에서 돌아오자마자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학생들의 안전한 하교를 책임지는 것도 자율방범대원들의 일이다.

    교통정리가 끝나면 곧바로 차량 순찰을 시작한다. 2인 혹은 3인 1조로 순찰차를 타고 웅동2동 전역을 살핀다.

    오후 10시가 되면 순찰조들이 다시 초소로 돌아온다. 용원고 3학년생들의 하교를 돕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 차량순찰. 방범대원들의 순찰활동은 자정까지 이어진다.

    웅동2동 방범순찰대에는 김재석 대장을 포함해 47명의 대원이 활약하고 있다. 1954년생부터 1985년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개인사업을 하는 이부터 인근 공단 근로자, 수협 중도매인 등 직업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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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석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 자율방범대장이 방범순찰차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김승권 기자/



    ◆20여년= “원래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근무했죠. 초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쪽잠도 자고….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수월한 겁니다.”

    각 동마다 자율방범대가 있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왜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경찰이 관리하는 조직으로 오해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자율방범대의 역사는 길다.

    6·25전쟁 발발 후 3년. 휴전협정을 체결한 1953년. 공비토벌로 경찰력이 부족해지자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마을을 지키겠다며 조직한 ‘주민야경제’가 자율방범대의 출발이다.

    ‘의용소방대’와 함께 ‘자율방범대’ 역시 주민자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63년 치안국 지시로 방범원 제도가 도입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자율방범대원들의 활동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6년 말 기준 전국에 10만6261명, 4335개 조직이 활동 중이다.

    김재석 대장은 20대 때부터 자율방범대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9년 11월 1일 웅동2동 자율방범대가 재창립됐다. 당시 창립 멤버였던 김 대장은 부대장에서 1년 만에 대장으로 뽑힌 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웅동2동을 지키고 있다.

    ◆오직 봉사= 김재석 대장은 청년회장, 바르게살기 위원장, 새마을협의회장, 청소년선도위원회 부회장, 통장협의회 등 지역에서 거의 모든 단체에 속해서 활동했다. 지금도 웅동2동 3통장이다. 통장 경력만 15년이다.

    김 대장은 4남4녀 중 여섯째다. 남자 형제 중에서는 막내이고, 아래로 여동생 2명이 있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형들이 가계를 꾸렸다. 가난했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는 졸업하지 못했다. 열여섯 무렵부터 형이 모는 고깃배를 탔다. 굴 양식도 돕고 어부로 살아왔다.

    그러다 약관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동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돕기 시작하다 본격적으로 여러 단체에 속해 활동했다. 돈벌이를 위해서였다면 다른 일을 했을 텐데, 하다 보니 일이 좋아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단다.

    “동네 청년회에서 방범대를 자체적으로 꾸렸죠. 지금의 용원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상가도 많고, 인근에 공단과 신항도 있고, 옛날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죠. 그런데 옛날에는 가난한 동네였어요. 도로 포장도 안 돼 있어서 주민들이 돈을 모으고 청년들이 도와서 포장을 하고 가로등도 설치했죠.”

    이런 일들이 계기가 돼 김 대장은 자연스럽게 방범대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방범대가 지원받는 금액은 25만원이다. 대원들은 각자 매달 1만원씩 회비를 낸다. 돈도 내고 봉사도 하는 곳이 방범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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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석 대장이 자율방범대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랑받는 방범대=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과 신고, 청소년 선도·보호, 미아·가출인 일시 보호, 재해·재난 발생 시 구호활동 참여, 경찰이 요청하는 치안업무 협조. 창원시 자율방범대 조례에서 정하는 방범대의 임무다.

    그러나 김재석 대장이 이끄는 웅동2동 자율방범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말에도 웅동2동 자율방범대 초소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명절도 예외는 없다.

    부산 처가에 제사가 있을 때도 어김없이 돌아와 순찰을 했고, 명절에도 처가에 다녀와 방범활동을 한다. 명절을 쇠지 않거나 멀리 가지 않는 대원들은 김 대장의 호출을 받는다. 명절에도 자율방범대 활동은 계속된다.

    이런 그를 아내가 좋아할 리 없다. “처음에는 싫어했죠. 그런데 지금은 내가 몸이 피곤해서 누워 있으면 등을 떠밉니다. 근무 나가야 한다고요. 딸과 아들, 사위와 며느리도 응원해줍니다.”

    방범대가 순찰하는 것만으로도 방범. 말 그대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 경찰도 주말·휴일 없이 방범활동에 나서는 웅동2동 자율방범대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밤늦게 귀가하는 학생들은 초소를 찾아온다. 방범대원들은 이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외곽지역에 사는 노인들을 모셔다주는 일도 한다. 이른바 ‘안심 귀가 서비스’다. 1년 365일 활동하는 웅동2동 자율방범대에게 주민들의 호응은 당연한 귀결이다. 도지사상, 시장상, 경찰서장상, 시민단체 감사패 등이 방범대 초소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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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석 창원시 진해 웅동2동 자율방범대장이 방범순찰차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김승권 기자/

    ◆앞으로= “자식뻘 되는 사람들에게 맞기도 하고 취객에게 욕도 먹기도 하죠. 특히나 용원이 번화해지면서는 더하죠. 그러나 우리는 경찰이 아닙니다. 대응할 수 없죠. 맞고 욕 먹어도 오히려 경찰에 선처를 호소하죠. 힘들죠. 그래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방범대 초소 한편 창고 속 캐비닛에는 오래된 서류철이 빼곡하다. 바로 ‘근무일지’다. 웅동2동 방범대가 재창립한 이후 그야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지가 역사를 말해준다.

    “뭐 없습니다. 개인적인 욕심도 없죠. 그래도 봉사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이어진 김재석 대장과 웅동2동 자율방범대의 일지는 앞으로도 계속 매일매일 쓰여질 것이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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