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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민주주의 교육- 황선준(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

  • 기사입력 : 2017-1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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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애가 초등학교 4~5학년 때 강아지를 사달라고 무척 조른 적이 있다. 아내는 이 문제를 가족회의에 상정했다. 오빠 둘을 포함해 다섯 명이 일요일 오후 3시 막 구워낸 빵과 주스, 커피를 앞에 두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내는 의장, 나는 총무 역할을 했다. 의장인 아내가 오늘 안건에 대해 얘기하며 딸애에게 왜 강아지를 갖고 싶은지 묻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딸애는 준비라도 한 듯 ‘강아지를 엄청 좋아한다’, ‘친구들 모두 강아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친구의 개가 최근에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았는데 그중 한 마리를 꼭 분양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오빠 중 하나가 ‘에바는 강아지 없잖아’라고 반박하며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아내가 자신도 강아지를 갖고 싶은데 키우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제일 큰애가 동물 알레르기가 심한데 이를 어떻게 할지 딸애에게 물었다. 그러자 딸애는 ‘큰오빠는 아빠가 집 뒤 나무 위에 지어놓은 원두막에서 살면 되잖아’라고 응수했다. 두 번째 이유로 아내는 동물보호법에 의하면 강아지에게 점심을 주고 점심시간에 적어도 30분 이상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물었다.

    딸애는 순발력을 발휘해 점심시간에 자전거로 집에 와 점심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오빠가 봄, 여름, 가을에는 문제없는데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아내가 결론적으로 우리가 개를 키우는 것은 무리라며 그 대안으로 실외에서 키울 수 있는 토끼 두 마리를 사자고 제안했다. 딸애는 꼭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고집했다. 그러자 아내는 오늘 이 문제를 결정하긴 어렵다며 일주일 후 다시 회의를 열기로 하고 폐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월요일 저녁 아내와 딸애는 토끼 두 마리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위의 일화는 민주주의 원칙의 핵심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아이를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실천 강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운다. 왜 강아지를 갖고 싶은지 뻔히 알면서도 물어봄으로써 아이가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도록 한다.

    둘째,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한다. 오빠의 주장과 어머니의 논리를 경청하고 이들은 또 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민주주의 근본을 배우게 한다. 서로의 주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이것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며 아이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아도 민주주의라는 것을 배운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강아지 대신 토끼를 키우게 돼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가 그냥 ‘안 돼’라고 일축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어린아이들도 이런 회의나 토론을 통해 내려진 결정은 수긍하고 잘 지킨다는 것을 우리 어른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또 민주적인 결정 방식이 언제나 최선이 아니라 가끔은 차선에 머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넷째,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배운다. 예로부터 ‘대쪽 같은 선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등에 부합된 미덕도 있지만, 가정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이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거나 상충하는 문제에서 서로 조금씩 물러서서 타협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 가정과 사회는 제 기능을 못한다. 정치의 꽃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된다.

    교육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가 민주시민 양성이다.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아이를 학교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부모가 가정에서 최대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며 솔선수범해 아이들이 참여와 토론을 통해 인간존중과 연대성, 자유, 평등, 정의 등의 민주주의 기본철학을 직접 체득하며 실천하게 해야 한다. 가정과 학교가 협력해 민주시민을 키워내야 한다.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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