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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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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목계의 철학, 의연함에 대하여- 이혜영(남촌법률사무소 변호사)

  • 기사입력 : 2017-1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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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기업 CEO 모임에서 한 대표가 ‘목계가 되자’라고 연설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언뜻 듣고는 가만히 있는 닭이 되자라니, 불의를 보고도 참자라는 말인가라면서 의아해했다. 풀이를 들은 후에야 그 속뜻을 알게 됐다.

    목계라는 말은 장자(莊子)의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투계(싸움닭)에 대한 우화에서 유래됐다. 투계를 좋아하던 중국의 어느 왕이 사육사였던 기성자에게 최고의 투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기성자가 40일 동안 심혈을 다해 길들이니 다른 닭이 아무리 도전해도 움직이지 않아 마치 나무로 조각한 목계(木鷄)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 공항에서 신분증이 없어서 가슴 졸인 적이 있었다.

    지난 7월 1일부터 신분증을 주민등록등본으로 대체하는 제도가 폐지됐던 것이다. 탑승시간은 한 시간 남았는데 신분증을 한 시간 거리의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급히 집으로 전화해서 공항으로 가져달라고 한 뒤 탑승수속을 밟고 있으라고 일행을 들여보내고, 여차한 상황을 대비해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었다. 침착하자고 되뇌면서.

    다행히 신분증을 잘 받아 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게 됐는데, 일행은 어떻게 전화 독촉도 안 하고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냐며 감탄했다. 하지만 독촉한다고 공항까지 날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상황이면 연락을 줄 것 아니겠는가.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급박한 상황과 종종 맞닥뜨린다. 의뢰인들은 법원서류를 들고는 오늘 당장에 해결해야 할 듯이 헐레벌떡 나를 찾아온다. 나는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경청한다. 급한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급하게 준비된 서면은 실수가 있기 마련이니 급할수록 차분하게 준비해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자세, 주변을 돌아보면서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준비하는 초연함이 가장 강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사무실의 전화가 울린다. 의뢰인이다. 나는 깊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수화기를 든다. 목계의 우화를 떠올리면서.

    이혜영 (남촌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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