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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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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가을과 뒷모습- 이문재 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7-1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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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엽이 깔린 길을 무심하게 걷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얕은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며 뒹구는 낙엽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낙엽도 한때는 여린 새싹이었다가, 또 한때는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였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제대로 펼쳐내 뙤약볕과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당당한 나무가 됐다. 하지만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무도 그 시간을 좇고 있다. 또 다른 봄, 또 다른 꿈을 위한 것일지라도 잎을 털어내는 지금 당장은 서글퍼 보인다.

    ▼기자가 일하는 회사 옆 인도는 걷기에 참 좋다. 한적하고 널찍하고, 낙엽이 쌓이면 며칠씩 그대로인 길이다. 이런저런 잡념을 떠올리거나, 때로는 빈머리로 터벅터벅 걷기에 딱이다. 큰 도로 옆 가로수라 꽤 오래된 듯한 나무들도 많다. 하지만 그다지 계획적으로 나무를 심지는 않은 모양새다. 나무의 종류나 모양, 키나 덩치도 들쭉날쭉이고 간격도 대중이 없다. 그래도 좋다. 대충 툭툭 던져놓은 듯한 게 자리를 잡고 어엿한 가로수 역할을 한다.

    ▼걷는 데 무슨 작정이 있을 리 없다. 길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또 되돌아가는 그런 식이다. 그다지 긴 길은 아니지만, 도심에서 가을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군데군데 단풍잎도 보이고, 고개만 들면 산도 있다. 공터에는 억새도 한 무더기 자리하고 있어, 너른 평원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물론 상상력을 한껏 끌어와야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것 치고는 꽤 톡톡한 보상이다.

    ▼길을 돌아서는데 지인들을 만났다. 내 뒤를 한참이나 보고 왔단다. 물론 나를 따라온 것은 아니라 같은 길을 걸었을 뿐이다. 조금은 낭패. ‘나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어느 시인이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고 했는데. 어여쁘기는커녕 초라하거나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뒷모습은 고칠 수 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는데. 잘나 보이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못나 보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을 따라 뒷모습도 점점 크고 뚜렷해진다. 올가을에는 뒷모습을 다듬어야겠다.

    이문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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