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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서-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1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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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중기 때 이인로는 시로써 명성을 떨쳤다.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경기체가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는 ‘원순문(元淳文) 인로시(仁老詩)’이라고 하여, 이인로는 시를 잘하는 인물로 노래되고 있다. 이인로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으나 요일 스님이 거두어 양육하고 공부하여 시문과 글을 잘하게 되었다. 벼슬길에 나아간 뒤 한림원에서 주로 임금이 백성들에게 내리는 명령이나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 여가에 임춘, 이담지 등과 어울려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겨서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고 칭하며 시작활동을 하였다. ‘고려사 열전’에서는 그가 성격이 치우치고 급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거슬려서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가 지은 시화집인 ‘파한집(破閑集)’에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신선의 고장이라 영이(靈異)로운 것들을 모으고 빼어난 것을 길러 온 지 오래라고 하면서, 다음 ‘유지리산(遊智異山, 지리산을 유람하며)’시를 기록해 놓았다.

    頭流山逈暮雲低(두류산형모운저) 두류산 저 멀리 저녁 구름 나직한데

    萬壑千巖似會稽(만학천암사회계) 많은 골짝 숱한 바위 회계산과 닮았구나.

    策杖欲尋靑鶴洞(책장욕심청학동) 지팡이 부여잡고 청학동을 찾아가니

    隔林空聽白猿啼(격림공청백원제) 숲 저편서 부질없이 원숭이만 울고있네.

    樓臺三山近(누대표묘삼산근) 누대가 아득하여 삼신산이 가까운 듯

    苔蘚依四字題(태선의희사자제) 이끼 속에 희미한 채 네 글자가 남았구나.

    試問仙源何處是(시문선원하처시) 물어보자 무릉도원 거기가 어디인지

    落花流水使人迷(낙화유수사인미) 복사꽃 흐르는 물 사람들을 홀리누나.

    이 시는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나섰던 감흥을 기록한 것이다. ‘파한집’에서 이인로는 옛 노인들이 전하는 청학동에 관한 말을 듣고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 당형(堂兄)과 함께 청학동을 찾아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선경이 펼쳐져 있어서 인간세상이 아닌 듯하다고 하였다. 이 시는 지리산의 먼 곳으로부터 청학동 가까운 곳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저녁 구름 낮게 드리워진 먼 곳에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이 보인다. 수많은 바위와 계곡은 중국의 회계산과 비슷하다.

    지팡이를 짚고 청학동을 찾아나서지만 숲 저편에서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저 먼 곳에 누대가 보이니 삼신산이 그곳에 있을 것이고, 이끼 속에 희미하게 아마도 ‘청학동천(靑鶴洞天)’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져 있었으리라. 그리고 계곡물을 따라 복사꽃이 떨어져 흘러오니 분명 어디인가에 무릉도원인 청학동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 이미지는 도연명의 ‘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빌려 온 것이지만 분명 어디인가에 청학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 시는 설화적인 중국의 무릉도원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한국적 변용으로서 청학동(靑鶴洞)이 설정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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