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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17) 가야불교(伽倻佛敎)

인도서 불교 직접 전래… 한반도 최초로 추정
허황옥, 서기 48년 불탑 가져와
고구려 첫 전래보다 324년 앞서

  • 기사입력 : 2017-11-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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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에는 가야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유적 유물들이 많다. 수로왕후 허황옥의 모국, 인도 아유타에서만 볼 수 있는 불교의 상징인 코끼리상과 신어(神魚)문양, 파사석탑(婆娑石塔) 그리고 절터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코끼리상과 신어는 수로왕릉 앞 납릉정문(納陵正門) 등에 있으며 허왕후릉 앞에 있는 파사석탑은 인도에서 주로 불탑의 재료로 쓰이는 파사석으로서 이들은 모두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가락의 국명으로 쓰고 있는 ‘가야’라는 말도 부처님이 도(道)를 터득한 인도 부다 가야(GAYA)에서 따온 불교 범어(梵語)로 절, 쌀, 소, 코끼리, 그리고 재앙을 물리쳐 주고 죄를 씻어 준다는 두 마리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또 가야는 ‘정복한 것’, ‘얻어진 것’이라는 불교적 의미가 깊어 한반도에 불교가 가장 먼저 가야에 전래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제10대 소수림왕 2년(서기 372) 6월 진 (秦)나라의 순도(順道)와 아도(阿道)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들어와 초문사(肖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 등을 창건하고 설법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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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를 가야에 처음 전래한 장유화상이 가락국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는 서림사. 지금은 그 자리에 은하사가 들어서 있다.



    ▲허왕후와 함께 온 장유화상이 전래

    그러나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오빠인 장유화상 허보옥(許寶玉)과 함께 불탑인 파사석탑 등을 가지고 온 서기 48년이라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래 설보다 324년이 앞선다.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그 수용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고는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공식 연대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은 첫 전래 연대였다기보다는 공인된 연대가 아닐까.

    따라서 가야불교는 고구려 신라 백제처럼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교의 본국인 인도에서 허왕후와 장유화상에 의해 직접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허왕후릉 앞에 인도 아유타 지방에서만 나는 파사석과 수로왕릉 납릉정문의 신어문양, 신도비의 태양문양 그리고 왕과 왕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 많고 가야에 불교를 전해준 서역(인도)을 향한 서향(西向) 절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가락국 초기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국유사와 사찰기록, 김해지방에 전해 오는 설화, 그리고 일부 불교계의 주장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허왕후가 불탑인 파사석탑을 싣고 와서 호계사(虎溪寺)에 처음 세웠다는 기록에 따라 그때 불교가 전해졌다. ②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수로왕과 허왕후가 합혼한 곳에 왕후사(王后寺)라는 절을 세웠다. ③가야(伽倻)라는 국명이 불교적인 것으로 부처님이 성도한 인도 가야(GAYA)에서 따온 것이며 인도어로 코끼리 또는 절(寺)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가야국명 유래 과정을 보아도 불교가 가장 먼저 도래됐다. ④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 허보옥은 불교 초전자로서 가락국사(駕洛國師)로 추존됐다. ⑤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에서 수도를 하여 신선이 되었고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을 짓고 정진을 계속하여 성불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수로왕이 그 자리에 절을 지어 칠불사(七佛寺)라 불렀다. ⑥김해 신어산(神魚山)에는 가야 서림사(西林寺)가 세워졌으며 그 뒤 건너편에 동림사(東林寺)가 창건됐다. ⑦수로왕은 허왕후가 가야에 도착해 첫날밤을 묵으면서 쉬었다는 명월산에 명월사(明月寺)를 창건했다. 수로왕은 또 명월산에 자신과 왕후, 세자를 위해 진국사(鎭國寺), 신국사(新國寺), 흥국사(興國寺)를 세웠다. ⑧허왕후는 분산성(盆山城) 안에 바닷길 2만5000리가 무사했음을 기려 해은사(海恩寺)를 창건했다. ⑨수로왕과 거등왕에 걸쳐 3암(父庵 母庵 子庵)을 창건했다. ⑩옥전(玉田)고분 등 가야초기의 고분과 김해 회현리유적지 등에서 구슬 목걸이로서 염주라는 불교 장엄구가 출토됐다. 또 불교를 상징하는 만형동기(卍形銅器), 일명 파형동기(巴形銅器)도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가야불교는 그 전래과정이 대부분 설화에 의존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유적 유물도 2000여년의 세월 속에 묻혀 손에 잡힐 듯 말 듯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따라서 오늘날 가야불교가 그 존재를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상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4국시대 말기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이 건립되었고 국내 도처에서 생산된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만든 석탑은 서기 600년경 백제에서 비롯됐다. 불상도 이때부터 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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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장유화상의 사리탑과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 김해 장유사 대웅전 뒤에 있다.



    ▲김해 곳곳에 가락고찰(駕洛古刹)

    김해지방에는 가락고찰(駕洛古刹)이라 이름 붙인 사찰이 많다. 신령스런 물고기가 살았다는 김해의 진산(鎭山)인 신어산(神魚山)에는 장유화상(長遊和尙)이 가락국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서림사를, 그리고 동생인 허왕후와 자신의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의 평안을 빌기 위해 동림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현재 서림사지에는 은하사(銀河寺)가, 동림사지에는 새로 동림사가 들어서면서 옛날의 절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은하사 취운루(翠雲樓)의 중수기(重修記)에 “세상에 전해지고 있기를 가락국 왕후 허황옥은 천축국(天竺國:인도)으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 여자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서림사를 창건하였다”라고 새겨진 목판 2개가 전해오고 있다.

    또 수로왕이 허왕후가 가야에 도착해 첫날밤을 보낸 명월산에 세웠다는 명월사도 절터가 불분명한 가운데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명동마을 뒤 옛 명월산 자락(현재의 옥녀봉과 보배산 중간)에 명월사의 맥을 잇는다며 광복 후 흥국사 (興國寺)가 들어섰다.

    법당에는 40여년 전 나무꾼이 근처 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탑신 (塔身) 조각 한 개가 보관돼 있는데 탑신 가운데 코브라 뱀이 부처를 감고 있는 형상의 화강암은 인도 부다가야 대각사에서 석가모니가 해탈의 열반에 잠겨있는 동안 그를 보호하는 무칠린다 코브라왕의 모습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다른 불타조각(佛陀彫刻)에는 이러한 조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미뤄 인도 불교가 가락국에 직접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 김해시 대청동 불모산 용지봉의 장유사(長遊寺),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에 있는 칠불사(七佛寺) 등이 가야불교와 연관이 깊은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이 안 되고 있다. 가야불교 전래는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는 셈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와 더불어 500여년간 우리나라 역사에 우뚝 섰던 가야왕국. 3국이 아닌 4국시대의 주체국으로서 그 실체가 엄존한데도 사료(史料) 부족으로 구전설화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가야불교의 잃어버린 역사도 가야의 역사만큼이나 아리송하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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