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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 열하왕환(熱河往還) - 열하에 갔다 돌아오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7-11-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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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중반 김찬삼(金贊三) 교수의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여행기가 아주 인기가 있었다.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 이전까지는 해외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소개해 줘 궁금증을 풀어 줬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당히 이름 있던 고전 여행기도 사람들이 별로 읽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직접 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기 가운데 지속적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고전이 바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 1737~1805) 선생의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박지원 선생은 1780년 청(淸)나라 건륭(乾隆)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경을 거쳐 열하(熱河)까지 갔다가 다시 북경을 거쳐서 귀국했는데, 독특한 시각으로 중국 문물을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기행문이 바로 이 책이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신들이 남긴 중국 여행기록은, 지금 남아 있는 것만 해도 650여종이나 된다. 그런데 유독 ‘열하일기’만이 계속 인기를 누리며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특한 시각과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의미 부여이다. 자신만의 사상을 담아 여타의 중국 기행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내용과 재미있는 서술방법이다. 어떤 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기행문’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신들은 대부분 북경(北京 : 일명 燕京)만 다녀오는데, 당시 건륭 황제가 여름 별장인 열하의 피서산장(避暑山莊)에서 정사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열하까지 다녀올 수 있어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열하는 지금 승덕(承德)이라는 도시인데,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700리 거리에 있다. 조선은 1644년에 망한 명나라는 황제 나라로서 지극정성으로 숭배하면서,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는 오랑캐 나라라 하여 거의 짐승처럼 무시했다.

    그래서 청나라에 사신 가기를 꺼렸고, 청나라에 가서도 외교활동도 아주 소극적으로 했다. 그런데 박지원 선생은 청나라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기 전에 아주 철저히 공부를 했다. 또 돌아와서도 광범위하게 수집한 자료를 3년 가까이 정리해 ‘열하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청(淸)나라를 치겠다는‘북벌책(北伐策)’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대신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했다.

    원문이 한문으로 돼 있어 읽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가원 선생 등 몇몇 전문가들이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 몇 종 나와 있어 관심만 가지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지난 11월 2일부터 5일 사이에 열하를 포함한 박지원 선생이 지나갔던 여행길의 핵심 구간을 다녀왔다. 다양한 참가자 중에는 관심이 많아 이미 전문가 수준의 공부를 한 사람도 있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더욱 유익하고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熱 : 더울 열. *河 : 물 하.

    *往 : 갈 왕. *還 : 돌아올 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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