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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울기엔 좀 애매할 때는 울어도 괜찮아

책 읽어주는 홍아 (6) 울기엔 좀 애매한(최규석)

  • 기사입력 : 2017-11-08 14: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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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여간 책 읽어 드리지 않은 것에 사과 말씀부터 드린다. 지난 한 달 사이 일생 최대의 이벤트가 있었다는 것을 핑계로 하고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만화책이다. 결코 긴 글을 읽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덧붙인다. 수능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미술을 하려는 자기를 뒷바라지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그림 연습장을 침대 밑에 숨기곤 했다. 어느날 어머니는 그 연습장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은 힘들지 않아"라고 (술김에) 말하면서 그에게 미술학원에 가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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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등록한 미술학원에는 '울기엔 좀 애매한'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합격해놓고 등록금이 없어 알바를 하며 그림 공부를 다시하는 재수생. 그 재수생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썸녀가 있었지만 돈이 없어 연애를 포기한다. 엄마가 몸이 아파 밤에 바에서 알바를 하며 학원을 다니는 예쁘장한 여학생.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는 대부분의 아이들. 반면 이런 학생들 사이에 약간은 어울리지 않은 한 학생이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로 그림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힘들어하는 학생이다.

    어느날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그 학생의 부모님이 학원을 찾아오고, 동시에 다른 학생들의 수시지원은 전담 선생이 아닌 다른 학원 선생에게 만류당한다. 착한 아이들은 모두 수시지원을 포기한다. 그런데 수시전형 결과 발표를 보고 학생들은 경악한다. 학원 측에서 그 아이를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그림을 이용해 포트폴리오를 대신 만들어 제출한 것이다. 그 부잣집 아이는 대학에 합격한다. 모두들 분노 했지만, 주인공은 낙담하면서도 현실을 받아 들인다. 그는 말한다. "돈도 능력이야. 머리가 좋으면 놀아도 성적이 잘 나오고, 재능이 있으면 그림을 잘 그리고, 얼굴이 예쁘면 살기가 편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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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울기엔 좀 애매하다. 재수생은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라며 단념한다. 사실 이들에게 단념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여느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준비하는 기계가 되어 대학 정시전형을 노린다. 겨울이 됐고 대학 결과는 나왔다. 주인공을 가르친 선생은 학원을 그만둔다고 송별회를 한단다. 모처럼 아이들이 모였다.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힘들지만 긍정적이었던 착한 주인공도 그 송별회로 향한다.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생은 묻는다. "어떻게 됐냐?" 웃음 짓던 주인공의 얼굴은 차츰 굳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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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모든 수험생의 이야기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모두 울기엔 좀 애매하다며 눈물을 가슴에 묻고 진학 준비하는 기계가 된다. 12년 동안 수능이란 한 곳만 바라온 그들이 곧 종점에 이른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에 사는 우리 아이들이 그날이 지나면 한숨을 돌린다. 누구는 희열의 눈물을, 다른 누구는 절망의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그들보다 아주 조금 더 삶을 살아본 입장에서 앞으로 눈물 흘릴 일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아는 나 역시 울기엔 좀 애매하다.

    이 만화를 그린 최규석 작가는 말한다. "그들의(학생들) 삶은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을 때보다 더욱 냉혹해졌고 누군가는 그것에 대해 죄책감이든 책임감이든 느껴야 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었던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대한)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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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어릴 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나게 많아질줄 알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니 더 많은 족쇄가 내 다리에 묶인다. 약한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것이 '삽자루 하나' 밖에 없지만 가진 삽자루 만큼이라도 '말도 안 되는 세상'을 고치기 위해 써야겠다. 수험장에 들어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의 앞날에 영광이 있을지, 절망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삽 한 자루 만큼 길을 닦아 나갈테니 그대들도 뒤에 오는 후배를 위해 길을 닦는 것을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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