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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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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과거 색채를 옮기다, 통영 전통채색화가 남아라 씨

“과거의 색채를 오늘로 옮겨 시대를 잇습니다”

  • 기사입력 : 2017-11-0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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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예상치 못했던 서울말이 흘러나왔다. 경기도 성남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통영 사람이란다. 통영은 아름다운 곳, 여행만 하기에는 아쉬운 곳, 때문에 무릇 예술가라면 몸을 붙이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펼치는 곳이란다.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단다. 통영에서 활동 중인 전통채색화가 남아라(34)씨 이야기다.


    ▲게임을 만들다

    그녀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게임 이야기로 시작됐다. 게임이라니? 전통채색화, 불화, 궁중회화… 이런 것들을 그린다고 하지 않았나? 젊은 여성 작가가 전통채색화를 업으로 삼는 것도 지역에서는 드문 일인데, 게임이라니.

    남 작가는 한양대 영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동기들이 모션디자인이나 웹디자인 업계로 진출할 때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피파, 피망 같은 게임을 개발한 네오위즈에 입사해 기획자로서 게임 초안을 잡았어요. 게임산업이 호황기로 접어드는 때이기도 했고, 적성에도 맞아 여러모로 만족스러웠죠.”

    이후 이직을 했다. 월트디즈니사에서 마블 라이센스로 다양한 게임들을 개발했다. 얼마 뒤 평화롭던 삶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미국 본사가 한국지사 능력을 인정하면서 개발 팀 전체가 캘리포니아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어요. 사실 그건… 생활공간을 옮기는 문제를 넘어선 것이었어요. 가정을 꾸릴 생각도 하던 때였고, 게임기획자로서 수명이 얼마나 될지, 정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좀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선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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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라 전통채색화가가 통영의 자신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전통채색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그림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 여행사진 찍는 것을 즐겼다. 부산에서 있었던 어느 여행사진 동호회 모임에 참석했다 신랑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신랑은 그녀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남쪽의 소도시, 통영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캘리포니아 대신 통영을 택했어요. 2013년 서른 살 되던 해였어요. 통영에 가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그림이었죠. 직장생활하면서도 어렴풋이 언젠가 그림을 그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런 날이 온 거죠.”

    가족과 친구들은 걱정이 많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통영에 어떻게 가느냐는 거다. 정작 남 작가는 괜찮았다. 연애시절 신랑을 따라 거닐었던 통영바다는 이국의 어느 바다보다 아름다웠다. 예술적 영감이 샘솟았다. 결혼 후 시부모님이 살던 북신동 옛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신접살림을 차렸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푸른 바다가 보이고 현지와 타지 사람들이 섞여 북적이죠. 저는 통영이 가진 이런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던요.”


    ▲전통채색화를 만나다

    통영에 정착 후 남 작가를 사로잡은 것은 뜻밖에도 전통채색화였다. 그녀가 해왔던 디자인은 매우 세밀한 작업이었고, 그것은 모사(模寫)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채색화, 즉 민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졌다.

    제대로 배워보려고 도내에서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작가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사실 많이 놀랐어요. 민화는 진채(眞彩)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불교미술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에 대해 정통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분들이 많았어요. 모양을 베끼는 손재주에만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스승을 찾아 헤매는 일을 멈췄다. 이후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모사공 시험을 준비했다. 모사공은 남대문이 방화로 소실된 이후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 중요도가 부각되면서 생긴 국가자격증. 6시간에 걸친 실기와 면접을 통해 매년 20명 미만으로 선발하며, 현재 모사공 자격을 가진 이들은 전국적으로 100명이 채 안 된다.

    옛것을 그대로 베껴 두는 일. 이러한 측면에서 모사는 인간이 가진 불멸이라는 내밀한 욕망과 맞닿아 있다. 복원된 문화재를 통해 후손들이 우리 세대와 우리 이전, 그 이전 세대를 통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이뤄지는 고차원적 예술활동이기 때문이다.

    “흔히 모사를 그대로 베끼는 것, 혹은 완벽했던 이전 외양으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조금 달라요. 작품 제작 당시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까지 연구해 동일한 방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사라고 합니다. 작품이 닳거나 찢어지거나 변색된 상태까지도 그대로 구현해 내야 하는 것이죠. 현미경 같은 도구를 써서 안료와 종이를 분석하고 제작기법을 알아내 그 방식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니까 모사는 재료와 기법, 작품이 관통해 온 무수한 시간까지 산입해 재현하는 것을 의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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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라 전통채색화가가 통영 작업실에서 전통채색화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승권 기자/


    ▲불화를 접하다

    남 작가는 현재 불화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모사공 시험을 준비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이수자 원여 이승규 작가를 찾아간 것이 불화와 인연이 됐다.

    불화 또한 ‘완전한 보존’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사와 일면 맞닿아 있다. 선을 긋고, 각기 다른 두께의 한지와 비단을 밀가루 풀을 이용해 배접(褙接)한 뒤 아교 녹인 물에 석채나 분채, 토채를 섞어 색을 넣는 꾸준하고 정교한 작업은 쉽게 훼손되지 않을 성스러운 초상을 남기는 일이다.

    “불화는 사실 수백년 이상 수명이 지속돼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에 깐 그림이죠. 고려시대, 조선시대 불화가 아직 남아 있는 이유죠. 한 번 그리면 수백년을 간다니… 수요가 잘 없어요. 그러니 불화는 돈이 안 된다고들 하고, 젊은층은 불화작업을 기피하죠.”

    밑작업과 채색을 할 때는 온몸이 절을 올리는 모습처럼 완벽한 리을(ㄹ)자의 모습으로 바닥에 붙어 지낸다. 아직은 초보 작가이고, 다양한 성인(聖人)과 성인 반열에 오른 분들을 모시는 일이다 보니 불교경전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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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라 전통채색화가. /김승권 기자/

    ▲통영에서 펼쳐보이고 싶은 것들


    통영사람이 된 지 4년. 스스로도 서서히 통영에 녹아들고 있다고 느낀다. 통영청년작가회에 소속돼 지난해 레지던시에 참여했고 11월에는 창원서 개인전 ‘아담, 소담’을 가졌다. 얼마 전부터는 한산대첩기념사업회가 추진하는 통제사행렬도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행렬도가 존재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모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활동의 근저에는 남 작가가 전통채색화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전통채색화만큼 모던한 그림은 없다고 생각해요. 화조도, 모란도, 일월오봉도… 주제가 뚜렷해 읽기 쉬워요. 장수, 다산, 행복 등등. 굉장히 현대적 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채색화처럼 아이콘화돼 있는 회화장르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통채색화를 두고 ‘무당집 같다’고 폄하하죠. 안타까워요. 그런 부분을 완화시키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요.”

    김유경 기자 bora@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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