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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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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생색에 대하여-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7-11-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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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시나카 쓰토무(西中務)라는 74세의 일본 변호사는 50년간 1만명의 의뢰인을 보고 ‘운(運)의 이치’를 분석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의뢰인들, 예컨대 상속과 이혼 등 분쟁의 당사자, 돈을 받아달라는 채권자나 범죄자들, 법망을 피해 교활하게 사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번창하는 사람들을 관찰해서 행운과 불운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운’이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운이 있고 없고는 ‘덕(德)’을 쌓고 있는가의 여부라고 했다. 덕은 가능한 한 다투지 않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인데, 목전에 있는 적은 이익을 위해서 분쟁을 만드는 사람은 덕을 쌓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분석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그의 설명 중에 나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봉사와 헌신을 해도 운이 잘 트이지 않는 사람은 교만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덕을 쌓으면서도 은연 중에 타인의 죄책감을 부추기면 덕을 쌓기 위해 고생해도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리보전하고 누운 시어머니를 큰며느리가 10년 넘게 간호해서 유산을 상속받았는데도 다른 자식들이 크게 반발했다. 다른 자식들이 돈 욕심을 낸 것이라기보다 큰며느리가 어머니를 잘 모신 것은 인정하지만 항상 감사하라며 생색을 낸 건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봉사하면서도 내 할 일을 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봉사도 헛것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살면서 시간과 돈을 들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되는 행동을 한다. 인생에는 힘든 때도 있고, 호시절도 있다. 호시절에 있는 사람이 힘든 사람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또 반대로 음지가 양지가 됐을 때 앞선 은혜에 대하여 되갚는 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을 소개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두레, 품앗이, 향약 등의 생소한 단어를 외우게 하는 이유는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어른들의 생각 때문이다. 선의로 어떤 사람을 도왔는데도 상대방이 은혜를 모르는 것 같으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밥을 사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애를 썼는데,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으면 다시는 호의를 베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베풀었던 호의가 아까워진다.

    사람은 본디 이기적이므로 은혜를 베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생색이다. 생색은 상대방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간다. 밥을 사면서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아느냐?’라는 둥, 시간을 내면서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아느냐?’라고 하면 은혜를 받는 입장에서 별로 달갑지 않다. ‘누가 이렇게 비싼 걸 사달라고 했나?’, ‘누가 바쁜데 꼭 와달라고 했나?’싶고, 호의를 받으면서도 ‘이 사람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할까? 뒤에 꼭 이만큼 갚으라는 건가?’라는 의심이 든다.

    특히 ‘어제 누구랑 만났는데, 내가 비싼 밥과 술을 샀고, 밤 늦게까지 함께하는 바람에 오늘 몹시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는 것은 최악이다. 호의를 베푼 상대방도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쓸데없는 생색을 내는 것은 도리어 반감을 산다.

    호의를 받는 입장에서 ‘고맙다’는 진심어린 말은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값진 답례가 된다. 상대방이 내어주는 생색은 서로를 위해 덕을 쌓는 일이 된다. 호의를 베풀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기에, 사람은 자기도 몰래 생색을 내는데, 생색을 내면서 베푸는 호의는 상대방에게 부담이 된다. 반면,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상대방이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생색을 낼 필요도 없고, 호의에 대한 답례를 잠정적으로는 마치는 것이어서 덕을 쌓음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생색은 상대방이 내어줄 때 아름답다. 생색을 내지 말고, 생색이 나게 해주는 것이 맞다.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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