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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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은아 가야문화예술인연합회 회장

문화 불모지에 문화 꽃피우는 문화 선생님
밀양 외딴 마을에 ‘일상문화’ 전파
백산마을 폐교에 문 연 ‘백산문화센터’

  • 기사입력 : 2017-11-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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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946년 문을 연 밀양시 하남읍 백산초등학교는 2014년 폐교됐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폐교와 함께 뚝 끊어져 버렸다. 언제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은 하나둘씩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갔고, 소수의 아이들만으로는 수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배움터도 아이들 없이는 그저 적막한 공간일 뿐이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이곳에 노인들의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다. 농사일로 분주한 주민들은 짬을 내 학교를 찾아 뭔가를 배우고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들을 뱉어 놓는다. 백산마을 주민들을 위해 문화 과목 선생님을 자처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은아(50) 가야문화예술인연합회장이다.

    적막이 흐르던 폐교에 지난 4월부터 주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생활문화진흥원의 지원으로 ‘백산마을 생활문화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형체만 있고 내실은 없었다. 주민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은 없었고, 공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김은아 회장은 백산마을 이장님과 문화 관련 워크숍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고, 이곳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고향 역시 하남읍에서 머지않은 이웃 동네 상남이었다. 하남들과 상남들의 요모조모를 꿰뚫고 있는 그는 센터의 문화 기획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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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 하남읍 ‘백산마을 생활문화센터’에서 문화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는 김은아 가야문화예술인연합회 회장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주민들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무엇을 왜 즐겨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거죠.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만 해 왔고, 자식들을 다 내보낸 후에도 생업에만 몰두하고 계세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주민들의 인생이 희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나침반이 되기 위해서예요”

    백산마을은 밀양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외딴 마을이다. 밀양 시내로 나가는 시간이나 창원, 김해로 가는 시간이 크게 차이 나질 않는다. 주민들은 물건 장만하러 밀양장에 가는 대신 가까운 진영장에 나가 일을 본다. 주민들은 문화를 접할 시설조차 없는 상태였고, 심리적 거리 또한 멀었다. 문화 생활이라는 말은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여겨 왔다.

    김은아 회장은 남들 다 있는 자가용이 없다. 그가 백산 마을로 들어오기까지는 김해에서 부산, 밀양을 거쳐 택시를 타야 하는 긴 여정에 나서야 한다.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7년 전 면허를 땄지만,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출퇴근 때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면허는 있는데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운전대를 못 잡겠더라구요. 백산마을까지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지만, 이장님이 가끔 데리러 와 주시는 덕에 큰 불편은 없어요”

    그는 주민들과 소통해 나가는 첫걸음으로 ‘청춘따라 꿈따라’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생업에 혹은 자식 뒷바라지에 밀려 평생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원들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행에 옮겨나가는 활동이다. 그는 할머니들이 ‘시화전’을 준비하며 써 내려간 글들을 마치 아끼는 작품을 다루듯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시는 반듯한 종이에 쓰여진 것들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찢겨진 달력, 신문의 빈 공간에 할머니들이 정성 들여 눌러 쓴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오와 열, 맞춤법이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그 의미만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시에는 시집와서 힘들었던 이야기, 자식들 다 키워 살 만하니 할아버지가 병이 들어 세월이 무정하다는 내용, 자식들 굶기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남의 고구마밭에 들어갔다는 내용처럼 평생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솔직한 얘기들이 담담하게 담겨 있어요.”

    할머니들은 문화센터에서 이뤄지는 한글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다. 부끄러워 평생 꺼내지 못했던 비밀 이야기들을 서툰 글을 통해 내보이고 있었다. 센터에서 한글 교육을 받은 송산마을 성해용 할머니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대회에서 ‘행복한 글’ 상을 받아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성 할머니는 문화센터에서 익힌 한글이 여든셋 인생에 이렇게 큰 기쁨이 될지 몰랐다며 김은아 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백산 문화의 날’을 통해 주민들이 함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농사일에 바쁜 어르신들을 무작정 모셔올 수는 없는 탓에 날짜는 주민들이 정하기 나름이다. 매달 지역 가수들의 공연, 전통음악 공연, 주민 노래자랑이 펼쳐져 멀리 나가지 않고도 남들이 이야기하는 문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됐다.

    “10월에는 5개 마을 주민들이 연습한 노래를 가지고 경연을 했어요.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주민들은 노래 강사에게 직접 레슨을 받았어요. 무대에 올라가길 꺼렸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죠. 아들딸들이 공연을 보러 왔고 자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생애 첫 경험을 하시게 된 거죠.”

    ‘문화가 있는 날’은 지역 문화인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가 가야문화예술인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맺어온 인연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해에서 활동하는 문화인들이 발 벗고 나서 백산마을을 찾아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뽐내고 있다. 그는 김해가 아닌 이곳 밀양의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해 주민들에게 더 나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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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마을 주민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스물한 살에는 울산공단문학상에서 수필·콩트 부문에서 상을 받아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말레이시아 멀티미디어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면서부터다. “학생들이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한국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어요. 교수가 왔다고 부채춤을 보여줬지만 부채와 의상은 열악했어요. 더구나 제대로 된 한국 문화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죠.” 그는 한국 문화 동아리의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사관과 현지 기업에 지원을 꾸준히 요청했지만 헛걸음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는 한국을 오가며 한복과 물품들을 사다 날랐고, 동아리 학생들에게 직접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2014년부터 김해 여성복지회관 관장으로 일하며 지역 문화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깊이 들여다본 지역 문화 안에는 노인이 소외돼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노인 문화는 내용 면에서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농촌은 문화 향유의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어르신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문화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는 2005년부터 십여 년간 명맥이 끊겼던 ‘허황옥 실버문화축제’를 지난해 다시 개최했다. 노인들은 여전히 희생 세대로만 남아 있었고, 본인들의 삶을 찾아갈 기회조차 없는 상태에서 축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사회적 열등감에 빠진 어르신들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느끼게끔 기회를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세월이라는 가장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승리자이고 더는 희생의 세대로만 생각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문화 기획자로서 그의 목표를 물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백산 마을을 떠나오는 것이 주민들이 제대로 된 문화를 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제가 매개자 역할을 하면서 백산 마을에 있지만 제가 없어도 이곳 주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창출해 내고 즐기는 것이 일상문화라 생각해요. 제가 없는 그 순간에도 주민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백산 마을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까지는 주민들의 문화 선생님 역할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어요.”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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