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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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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얼로너- 강지현 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7-11-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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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혼자’는 ‘청승’ 혹은 ‘왕따’의 아이콘이었다. ‘남들 눈’에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했다. 하지만 관계에 집착할수록 삶은 더 피폐해졌다. 의미 없이 쌓이기만 하는 대인관계는 관태기(관계 맺기+권태기)를 불러왔다. 이에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자인 삶을 즐기는 사람, 바로 얼로너(aloner)다. ‘나의 행복’이 최우선인 이들은 ‘남의 눈’에서 자유롭다.

    ▼얼로너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혼밥(혼자 밥 먹기)에서 시작한다. 혼밥 레벨에 따르면 편의점 식사는 1레벨, 술집 혼술(혼자 술 마시기)은 최고 단계인 9레벨이다. 2단계는 당당한 혼영(혼자 영화보기)과 혼놀(혼자 놀기). 노래방 혼곡(혼자 노래하기), 혼행(혼자 여행), 혼캠(혼자 캠핑)을 즐기는 단계다.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다 보면 3단계인 덕후(한 가지 분야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되어 성덕(성공한 덕후)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1코노미(1인과 이코노미(economy·경제)의 합성어)’ 열풍의 주역도 얼로너다. 은행·보험·카드업계에선 이들을 겨냥한 금융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유통·외식·가전업계도 혼족시장 선점경쟁이 치열하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이 혼영족의 사랑 덕분에 재조명받기도 한다. 도서시장에서는 ‘혼자’ ‘홀로’ ‘고독’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이 인기다.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얼로너, ‘혼자’는 더 이상 궁상의 표본이 아니다.

    ▼혼술 한잔 걸치며 드라마 ‘혼술남녀’ 대사를 떠올려 본다.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일상을 꿋꿋이 버티기 위해서다. 누군가와 잔을 나누기에도 버거운 하루. 쉽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혼술을 한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떠들썩한 모임 대신 ‘나홀로 송년회’를 가져보자. ‘고독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모리 히로시는 말했다. “고독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고독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라고. 이번 연말엔 ‘고독한 혼말족(혼자 연말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볼 참이다.

    강지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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