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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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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221)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37

“고마워요”

  • 기사입력 : 2017-1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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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는 이 땅에 발붙일 수 없었다. 이춘식이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양반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걸 아무도 말하지 않던데….”

    “사회주의자는 빨갱이야. 6·25 직후에 고생을 많이 했지.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책만 보면서 산 거야. 한 번은 내가 자금이 필요해서 윤 회장 집에 갔더니 이 양반이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더라고….”

    “무슨 책인데요?”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론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책은 서경숙도 읽은 적이 있다. 슘페터는 오스트리아 재무장관 출신으로 독일에서 강의를 했다.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자 미국으로 망명,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하여 명성을 떨쳤다.

    “70년대 대학생들이 많이 읽던 책이잖아요?”

    “그렇지. 나도 읽은 책이라 관심이 가더군. 그래서 이 양반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 양반이 박람강기(博覽强記)야.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었어. 몇 시간 동안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윤사월이 지극정성으로 대접하더라고… 그 후에 일년에 한두 번씩 찾아가서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는 했는데 윤사월이 아주 고마워했어.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이자도 받지 않고 빌려줄 정도로.”

    임준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임준생과 윤사월은 좋은 관계에 있는 것 같았다.

    “인간적으로는 어때요?”

    “고리대금에 사채를 했으니 천당에 갈 수는 없겠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임준생이 회한에 젖었다. 서경숙도 이춘식의 삶을 생각하면서 쓸쓸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호텔로 갔다.

    “우리 경숙씨는 언제 봐도 예뻐.”

    임준생이 옷을 벗고 서경숙에게 엎드렸다. 그의 입술이 서경숙의 입술에 얹혀졌다. 서경숙은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면서 눈을 감았다. 그의 부드러운 애무에 서서히 몸이 더워지고 있었다.

    “고마워요.”

    서경숙은 백치처럼 입을 벌리고 웃었다. 지난밤에는 장대한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루밖에 되지 않아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자신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나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죽기 전에 욕망과 쾌락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가. 살아있을 때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준생과 사랑을 나누었다. 장대한과의 사랑이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것처럼 격렬했다면 임준생과의 사랑은 봄바람이 불듯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 너무 좋았어요.”

    사랑이 끝나자 임준생의 품에 안겨서 속삭였다.

    “나도 좋았어.”

    임준생도 만족한 표정이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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