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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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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222)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38

“날씨가 이런데도 사람이 많아요”

  • 기사입력 : 2017-11-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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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쓸려다녔다. 바람은 겨울의 냉기를 품고 비를 몰고 왔다.

    후드득.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렸다. 빗방울 때문에 나뭇잎이 더욱 자욱하게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뭇잎은 노랗고 붉었다. 비 때문에 노랗고 붉은 나뭇잎이 더욱 선명했다. 사나운 비바람에 나뭇잎이 날리고 앞에 가는 여자들의 치맛자락을 날렸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내장산 단풍터널.

    서울에서 단풍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내려온 길이었다.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바람이 불고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더니 빗발이 뿌렸다.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단풍을 보기로 결정했다. 내장산 단풍은 산의 단풍보다 내장사로 올라가는 길이 단풍터널을 이루고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분다고 해서 놓칠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네요.”

    서경숙이 임준생을 향하여 미소를 날렸다. 비바람이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사나웠다. 그래도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있어서 견딜 만했다.

    “뭐 이런 날도 추억이 되겠지.”

    임준생은 아웃도어를 입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내장산 단풍터널은 낙엽이 자욱하게 떨어져 있다.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품을 더욱 그립게 한다.

    임준생이 우산을 들고 서경숙은 임준생의 팔에 매달렸다.

    “날씨가 이런데도 사람이 많아요.”

    “내장산이 전라도 5대 명산이래. 월출산도 유명하지. 월출산 국립공원에는 다산초당도 있어.”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초가집이다. 고등학교 때 사촌들과 함께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했을 때 다산초당에 들렀었다.

    “다산초당에 간 일이 있어요.”

    “언제?”

    “고등학교 때요. 사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사촌이 모두 아홉 명인데 이 제안을 한 것이 저였어요. 대학생이었던 외사촌 오빠가 리더를 했고….”

    “대단하군.”

    “그때는 정말 초가집이었는데….”

    “다시 가볼까?”

    “좋아요. 여기서 멀지 않잖아요.”

    서경숙은 유쾌하게 말했다. 비바람이 불고 있지만 단풍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곳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고, 연인들도 있고, 부부가 같이 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단풍 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바람이 불고 날씨는 차갑지만 공기는 청정했다. 숲의 향기가 그대로 몸으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장사는 단풍에 둘러싸여 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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