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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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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문화예술도시 창원, 문화적 과정에서 답을 찾자(2)

(2) 스페인 아테네우
삭막한 공장서 예술의 장으로… 주민이 만든 ‘문화명소’

  • 기사입력 : 2017-11-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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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바로셀로나 북동쪽 변두리의 로케테스에 위치한 문화운동의 산실 ‘아테네우’.

    아스팔트 공장을 점거해 문화공간 아테네우로 탈바꿈시킨 주민들은 서커스 연극을 탄생시키는 등 자원봉사와 자치운영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이 깃든 문화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아테네우는 스페인의 민주화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75년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년)의 죽음으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투표가 진행되는 등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당시 이곳에는 ‘카탈루니아 드림’을 꿈꾼 100만명에 이르는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와 집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고, 하수도 시설을 갖추는 등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자기주도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공통의 목적을 가진 주민들은 가난했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문화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정부를 설득하는 등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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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아스팔트 공장을 점령한 주민들.



    하지만 정부는 1970년 산업시설 대신 문화시설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해를 내뿜는 아스팔트 공장을 세웠다. 이는 결국 주민들이 아스팔트 공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테네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페르난도는 “아파트 인근의 아스팔트 공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주민들의 골칫거리였다. 빨래를 밖에서 말릴 수가 없게 된 주민들이 시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무시당했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1977년 1월, 아스팔트 공장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해 망치로 공장을 무너뜨린 후 일부 시설물을 제외한 물류창고와 탈의실, 식당 등을 불법 점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있었으나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여기에 문화센터, 학교, 의료시설(응급센터) 등 교육과 위생을 갖춘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기를 원했고, 무엇보다 문화센터가 들어서기를 간절히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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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바로셀로나 북동쪽 변두리의 로케테스에 위치한 문화운동의 산실 ‘아테네우’ 전경.



    현재의 아테네우는 주민들이 다음 세대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불법 점거한 아스팔트 공장을 ‘아테네우 포플라르’라고 불렀다. ‘서민적’이란 의미의 아테네우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 교육적인 것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공간, 부자들이 아닌 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점차 변화돼 갔다. 당시 이곳은 아테네우를 중심으로 9개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이 공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1977년, 1978년 2회에 걸쳐 30시간 동안 이뤄진 예술축제는 바르셀로나 시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촉매제가 됐다.

    축제에서는 음악콘서트, 서커스, 토론이 이어져 주민들의 요구를 문화적으로 승화하며, 공동체 결속을 강화시켰다. 주민들은 예술축제를 문화향유를 위해서라기보다 사회적 요구나 활동에 대한 통로로 활용했다.

    주정부에서는 주민들의 아스팔트 공장 점거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주민공동체의 꾸준한 노력과 투명한 경영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현재 아테네우는 바로셀로나 주민 자치시설 중 가장 우수한 사례로 손꼽히며 유럽 전역에서 찾는 지역 아동들의 예술교육 거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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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서커스 공연.



    주민들의 헌신과 자발적 동기로 운영된 아테네우는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스페인 전역에서 시민문화센터 설립 붐이 일면서 현재의 외형을 갖췄다. 이를 계기로 아테네우는 더이상 주민들이 불법 점거한 공간이 아닌 주민들이 운영권을 가진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특히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에서 지원된 리모델링 공사가 4년(1992~1996년) 동안 지속되면서 아테네우는 창의·창조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서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됐다.

    아테네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페르난도는 “장기간 활동이 중단되면서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다른 교류센터와의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이는 아테네우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아테네우는 서커스 공연장, 서커스를 활용한 예술교육으로 유럽 전역에서 명소로 꼽힌다.

    1996년 재오픈 이후에도 공공주도가 아닌 주민운영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아테네우는 서커스 학교(6~16세)와 공연기획, 문화활동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약 100명의 어린아이들이 일주일에 2번 단계별로 나눠 서커스 교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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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서커스 전문예술단체 단원들의 연습 모습.



    서커스 교육은 예술적 교육이 아닌 사회적 측면의 교육적인 도구로서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아테네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은 그들만의 운영방식인 ‘주민 자발적 운영체계’에 있다.

    아테네우는 주민·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존재하며 이들은 1년에 3회에 걸쳐 아테네우의 운영에 대한 협의를 갖는다. 또 운영위원회 내에는 각 파트별(교육·프로그램·프로적션) 소위원회가 있으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도 있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페르난도는 “운영위원들의 활동은 전부 자원봉사로 각 프로그램마다 활동, 재원 조성 등에 관해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이 아테네우를 운영하는 지지기반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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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우 내 커피숍.



    아테네우에는 40년 전 아스팔트 공장을 점거한 7명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로라(70)가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아테네우는 운영위원별로 전문성과 봉사, 그리고 열정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곳의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전해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나 역시 내년 퇴직 후에도 이곳에 남아 봉사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테네우는 건강한 주민협의체를 기반으로 15명의 상시 근무인력이 있다. 이 중 10명은 사업계획·실행, 3명은 수익을 위한 카페 운영, 2명은 위생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외 50여명의 비상근 근무자들은 교육강사, 음향, 조명, 엔지니어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연간 예산은 대략 100만유로(약 13억원)로 바르셀로나 시청, 카탈루니아 도청, 국가에서 지급되는 공공자금(50%)과 공연, 카페, 비디오 판매, 대관 등 자체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그리고 전체 예산의 50%는 사업비로, 나머지는 인건비로 쓰여진다.

    아테네우는 단순한 문화시설이라기보다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의 삶과 질을 고민하고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현장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며 그 시간의 역사가 문화로 축적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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