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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수능과 교육 개혁- 이춘우(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1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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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지진으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무사히 시험이 치러지기는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인 수능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수능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사항으로 이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던 터였다. 그러던 참에 지진이라는 의외의 변수가 수능 개혁의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시험 문제를 풀고 그 결과로 대학에 진학하는 지금과 같은 제도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존재하는 지진이라는 변수에 매우 취약한 제도임이 드러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수능의 위상과 성격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입시는 2008년에 입학 사정관제가 도입된 이래 다양한 수시 전형이 정시를 압도하면서 정시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소질과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평가해 대학의 특성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수시 제도는 다소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갈수록 정시의 비중이 줄어드는 마당에 점수 하나로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비교육적이고 획일적인 평가 시스템인 수능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자연 재해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 만큼 수능의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수능을 절대 평가화하고 자격 고사화하려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능에 대학선발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한 수능을 절대 평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능에서 대학 선발 기능을 빼고, 수능을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웠는지만 평가하고, 학생 선발은 대학에 일임하면 그만이다.

    우리의 수능과 흔히 비교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사실 수능과 절반만 유사하다. 왜냐하면 이 시험이야말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이면서 동시에 대학 수학능력을 보증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20점 만점에 평균 점수가 1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올해의 경우 합격률이 78.6%에 이른다. 자격시험이라고 해서 그 수준을 얕보면 오산이다.

    필수 과목인 철학 시험 문제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정답을 가려내는 기술만 습득한 학생들은 한 줄도 쓸 수 없는 문제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올해 문제를 보면 “해야 할 권리가 있는 모든 행위들은 정당한가?”, “예술 작품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이 출제됐다. 사회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과 판단력이 없다면 쓸 수 없는 문제들이다. 프랑스의 저력은 바로 이러한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유럽에서 이러한 절대 평가 방식으로 고교 졸업 자격을 확인하고 동시에 대입 자격을 주는 시험을 치르는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물론 이 두 나라에서 이런 자격시험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대학이 서열화돼 있지 않고 평준화, 국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평준화와 국립화도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시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기술혁신과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올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식은 차고 넘쳐서 굳이 그걸 암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창의적으로 접목하고 활용할 유연한 사고력과 상상력이다. 지난 수십 년간 사회는 급변하고 있는데 교육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 패러다임을 전반적으로 바꾸려는 큰 틀에서 입시 제도의 개혁도 고려해야 한다. 단지 수능 개혁이 아니라 교육 개혁이 절실한 때이다.

    이춘우 (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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