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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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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광고물 피해 아슬아슬 지그재그로 걷는 사람들

[기획] 길 빼앗긴 보행자들 (상) 실태
창원 성산구 상남동·합성동 옛길
인도 좁거나 없어 차량·사람 뒤엉켜

  • 기사입력 : 2017-12-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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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동차가 등장한 후 사람은 언제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차는 차도, 사람은 인도라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차의 영역은 확대되고, 사람이 설 곳은 점점 좁아졌다. 사람들은 차의 위계에 눌려 편리하고 안전하게 걸을 자유를 박탈당했다.

    설 곳을 잃어가는 보행자를 위해 지난 2012년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보행자가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우리나라 최초 법률이다. 보행권에 대한 인식도 높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본지는 3편에 걸쳐 위태로운 보행자의 현주소와 보행자가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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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김해시 외동 먹거리 1번지 골목에서 시민들이 이동식 광고물인 ‘에어라이트’ 사이를 미로 찾기 하듯 걷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라진 인도= 지난달 30일 오후 7시께 창원시 성산구 상남분수광장 일원. 이곳은 경남 최대 번화가로 도로를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엉켜 늘 혼잡하다. 특히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몰려드는 이 시간대는 차도나 인도 할 것 없이 꽉 막혀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다. 은아그랜드타운아파트와 상남분수광장을 오가는 주도로 옆 인도는 폭이 좁은 곳은 1m30cm로 두 사람이 채 교행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이 도로를 따라 좌우로 연결되는 각 도로에는 인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 주차공간으로 쓰이거나 불법 주차가 돼 있는 탓에 보행자들은 차도로 통행해야 했다. 도로 위 줄지어 서 있는 차들로 인해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다. 차량에 점령당한 횡단보도를 보행자들이 이용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행자들이 도로 위 차량들을 피해 갈지(之) 자로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다. 우종훈(65·성산구 상남동)씨는 “운전자와 보행자 간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며 “창원 토박이라 이곳 발전과정을 지켜봐 왔지만, 보행자들이 걸어 다니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 뒤 합성옛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왕복 2차선 도로인 이곳도 유동인구와 통행차량이 많지만 인도가 없는 탓에 보행자들은 갓길에 몸을 밀착한 채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하는 실정이다. 취재진이 둘러본 1.7km가량 구간에만 30여 대의 불법 주차차량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고, 차량이 양방향으로 오갈 경우 차량과 보행자 몸이 스치듯 지나가는 위험한 광경도 수차례 목격됐다.

    도로 갓길로 몸을 붙여 걷다가도 광고물이나 차량이 나타나면 다시 도로 한가운데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예지(29·창원시 성산구)씨는 “인도가 없는데다 걷기 좁은 길 곳곳에 불법주차차량과 오토바이가 널려 있어 위험하다”며 “10년 넘게 이곳을 오가면서 이제는 ‘차가 알아서 피해가겠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배려 없이 점령당한 인도= 비슷한 시각 김해시 외동 먹거리 1번지 골목에는 이동식 광고물인 ‘에어라이트’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도 한가운데를 점령한 에어라이트는 불과 10m 남짓 거리에 무려 12개가 어지럽게 세워져 있었고, 부동산중개사무소와 음식점에서 내놓은 광고입간판이 더해져 보행자들은 지그재그로 이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인근 아파트에서 자녀 둘을 데리고 외식을 나온 최모(44)씨는 “광고판 때문에 골목을 걸어 다니려면 이리저리 몸을 피해 다녀야 한다”며 “시청에서 단속하는 듯싶더니 이제는 아예 손을 놓은 것 같다”고 불평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최씨 가족 앞으로 별안간 배달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먹거리 골목에 진입하기 전인 내외119안전센터 앞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없는 탓에 골목으로 들어서려는 사람과 몰려든 차량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가로등 사이에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단속지역’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지만 차량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은 일시정지가 원칙이지만 신호가 없는 탓에 좌회전하려는 차들은 횡단보도 위에서 교차로에 진입하려 대기했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은 차량과 스치듯 위태롭게 도로를 건넜다.

    ◆차량 위주 신호체계=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는 신호등 체계를 비교해봐도 선명히 드러난다. 보행신호등의 보행시간이 보행자의 이동시간보다 차량의 신호시간에 더 기준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한국전력공사 경남본부 앞 신월삼거리에는 3개의 횡단보도가 있다. 한전 앞에서 토월복합상가 방향으로 주도로를 가로지르게끔 놓인 두 횡단보도의 경우 14m로 거리는 동일하지만, 보행신호는 각각 21초와 25초로 달랐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는 차량의 신호시간을 고려해 보행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이 횡단보도 앞에서 양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의 신호 시간은 1분34초였다. 이에 접속도로 위 횡단보도는 거리가 18m이지만, 주도로의 직진차량이 오가는 시간만큼인 1분34초 동안 보행신호가 켜졌다. 신월동 은아그랜드타운아파트 앞 상남동 상남시장을 오가는 두 횡단보도 역시 주대로인 원이대로를 가로지르는 탓에 26m 거리에 보행시간이 각각 32초이지만, 직진차량의 신호에 영향을 받는 같은 방향 횡단보도는 10m 거리에도 1분 30초가량이 주어졌다. 극단적으로 차량에 많은 신호시간을 주는 곳도 있다.

    창원시 의창구 중앙동 개나리상가 앞 4차로 도로에 걸쳐져 있는 횡단보도의 보행신호는 25초인 반면, 차량신호는 2분10초에 이른다. 출퇴근시간에 정체가 심한 곳이라고 해도, 보행자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 없다.

    횡단보도의 보행시간은 규정에 따라 거리에 비례하지만, 차량 통행량을 고려해 조정되기 때문에 이처럼 제각각이다. 이날 한전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김애숙(54·의창구 신월동)씨는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남은 보행자 신호 시간은 불과 2초였다. 대부분 김씨처럼 촉박하게 신호 시간을 맞추는 상황이었고 노약자나 장애인들의 경우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김씨는 “매일같이 운동을 하러 오가며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신호가 항상 짧다”고 말했다.

    김재경·도영진·박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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