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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당구장 금연에 대한 자잘한 생각-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12-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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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장발을 한 일단의 청년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당구대에 둘러서 있다. 큐로 공을 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당구대 옆 테이블에는 시커먼 소스에 몇 가닥의 면발과 몇 점의 양파 조각이 흉하게 붙어 있는 자장면 그릇 몇 개가 놓여 있다. 그 옆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담겨 있고, 불씨가 남은 담배에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국영화 속 당구장의 모습은 대부분 이렇다. 스포츠시설이라기보다는 도박장에 가까운 분위기로 그려진다. 당연히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도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이 지배한다. 당연히 멜로보다는 느와르 영화에 어울리는 장소가 당구장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뀔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난생처음 당구장이라는 곳에 들어섰을 때의 모습도 이랬다. 그곳은 낯설다 못해 거북했다. 그러나 몇 번 출입을 반복하다 보니 금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나 자신이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됐다.

    그런 당구장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흡연을 금지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음식점이나 PC방, 대규모 체육시설 등과 같은 공중이용시설은 빠른 곳은 2012년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이에 비해 당구장이나 스크린골프장과 같은 실내체육시설은 이보다 수년이나 늦은 지금에야 흡연이 금지된 장소가 됐다. 당구장 금연은 2012년에도 거론됐다. 그러나 손님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업주들의 반발이 강했다. 당구 동호인들도 당구 치는 재미가 없어진다며 업주와 같은 편에 섰다.

    음식점이라고 금연구역 지정이 순탄했을 리가 만무하다. 금연구역이 되면 손님이 싫어한다, 손님이 줄어든다, 담배 피우는 손님을 업주가 어떻게 제지하느냐 등의 말이 난무했다. 생존권 보장 등의 이유로 소형업소는 빠지고 대형업소만 먼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고, 그것도 영업장 내 절반만 우선 적용됐다.

    음식점이 금연구역이 된 지 4~5년이 지난 지금, 음식점에 담배연기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는 남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확연히 달라졌다. 담배를 못 피우게 됐다며 발길을 끊은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지만, 담배 때문에 음식점에 안 가는 사람이 있다면 뉴스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 물론 불편을 느끼는 흡연자가 없을 수 없다. 밥을 먹고 난 뒤 바로 담배에 불을 댕겼으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겠지만, 밥을 먹는 기쁨, 동석한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으로 이를 기꺼이 억누르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당구장도 앞서 금연구역이 된 음식점과 같은 길을 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업주가 있고, 입에 담배 물지 않고 무슨 재미로 당구 치겠느냐는 동호인도 있다. 당분간 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담배연기 없는 당구장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당구장을 찾는 손님들의 성별과 연령대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비흡연자는 물론이고, 여성이나 가족 단위 손님들의 발길이 늘어날 것이다. 당구가 르네상스를 맞는 것이다. 대한당구연맹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구가 진정한 생활스포츠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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