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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장내고려(墻內高麗) - 담장 안은 고려다

  • 기사입력 : 2017-1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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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고속도로 산인 톨게이트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산속에 있는 마을이 함안군(咸安郡) 산인면 (山仁面) 모곡(茅谷)이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담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한자로는 ‘장내(墻內)’라고 쓴다. 마을 이름이 왜 ‘담안’일까?

    고려(高麗) 왕조의 기운이 날로 기울다가 1392년 결국 나라가 망했다. 고려의 관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새 왕조 조선(朝鮮)에 벼슬하여 영달을 꾀했다. 반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같은 분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 :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의 지절(志節)을 지켰다.

    이때 밀양(密陽)에 살던 진사 (進士) 이오(李午)는 고려를 위해 지절을 지켜 벼슬할 뜻을 끊고 숨었다. 처가가 있는 의령(宜寧)을 왕래하다가 모곡을 지나면서 자미화(紫微花 : 백일홍)가 무성하게 핀 것을 보고 자신의 은거할 곳으로 삼았다. 그리고 모은(茅隱)이라고 호를 삼았다.

    그곳에 담을 쌓고 담의 안은 조선이 아니고 여전히 고려라 하며 지절을 지켰다. 거기에 고려의 전답이라는 ‘고려전(高麗田)’도 있다. 이 일대가 ‘고려동(高麗洞) 유적지’라 하여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고, 함안군에서는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하는 중이다.

    모은 이오는 재령이씨(載寧李氏) 함안 입향조(入鄕祖)이다. 그가 지조를 지키며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번성하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또 이 집안은 독서에 힘쓰고 겸손하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전통을 세웠다. 이 모두가 모은이 바르게 산 영향 때문이다. 그가 영달에 눈이 어두워 새 왕조에 아부하며 벼슬했더라면 자신은 호의호식했을지 몰라도 가문의 품격이 아주 떨어졌을 것이다.

    그 손자 근재(覲齋) 이맹현(李孟賢)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그 아우 율간(栗澗) 이중현(李仲賢)도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을 지냈다.부제학은 홍문관(弘文館)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당대에 학문과 시문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맡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형제가 부제학을 지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조선 숙종(肅宗) 때에 이르면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나왔는데, 퇴계(退溪) 이후 최대의 학자라는 칭송을 듣고 있고, 퇴계의 적통(嫡統)을 이은 학자로 추앙받는다. 그 아들 밀암(密庵) 이재(李栽) 역시 최고의 학자로 퇴계의 적통을 이었다. 함안에서도 율간(栗澗)의 후손 가운데 모계 (茅溪) 이명배(李命培) 등 많은 학자 문인들이 나와 재령이씨 가문을 빛내 주었다. 조상의 바른 삶이 후손들의 이정표가 된 것이다.

    지난 12월 7일 함안문화원 주최로 ‘모은 이오의 생애와 학문 및 그 자손들’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성황을 이루었다. 벌써 7회째 학술대회인데, 함안문화원은 문화원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문화원인 것 같다.

    *墻 : 담 장. *內 : 안 내.

    *高 : 높을 고. *麗 : 고울 려.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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