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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이승주(기업문화서비스사 대표)

  • 기사입력 : 2017-1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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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일에 슬쩍 발을 딛는다. 그리고는 이내 낯선 분야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어? 내가 이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오랫동안 해온 업무와의 교집합이 많을 줄 알았던 기대가 계산착오였다. 자가 능력 평가의 오류인가? 천천히 멀리 가기 위한 축복일까? 한 고개, 한 고개, 어렵사리 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딱 아는 그만큼만 보이고 들린다. 조언을 듣고 자료를 뒤지며 시놉시스를 구축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스스로 실망과 격려를 교차하는 좌충우돌 널뛰기지만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하는 습관으로 인해 잠깐씩 멈춰 심호흡하며 꾸준히 가려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세미나가 한창이다. 개념을 말하고 현상을 말하고 대책을 이야기한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생존하자면 먼저 뛰어나가지는 못해도 최소한 걸음은 맞춰야 하기에 부산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혁명의 사전적 정의는 ‘종래의 관습,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움’이다.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새롭게 함’이란 혁신은 시대의 최소한의 요구다. 혁신은 조직에만 국한된 것일까? 모든 것의 시발점인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요소라고 여겨진다. 지난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신중하게 짚어보고 나아가야 할 부분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두려운 미래를 푸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그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끊임없이 변화되는 미래에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하려는 마음가짐과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이다.” 백전백승을 위한 지피지기보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기혁신을 이루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언급이다.

    과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타고난 본질을 제대로 알고 그 안에 숨은 보석인 소명을 알아채는 것을 인간학적 측면으로 본다면 KSA, 즉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스킬, 태도 등 사회생활을 하며 벌어놓은 것들까지 포함될 수 있겠다. 자신을 제대로 알면 폭은 점차 넓어져 타인 이해로 이어진다. 또한 직분을 수행할 때 자신만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게 되어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특별한 한 가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알아채고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은 빛나는 삶을 살지만 주어진 대로 열심히만 사는 사람은 아마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신명나는 삶을 위한 변화가 필요할 때 작은 규모로 진행하는 점진적 혁신인 ‘슬로 이노베이션’을 권해본다. 속도로 인해 조직혁신에서는 어려운 시도일 수 있겠으나 개인에게는 스스로 통찰하며 시간을 두고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도전은 낯선 일이므로 서툴고 어렵다. 조력자가 곁에 있다 해도 다 알고 설명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모르는 도전자에게는 생소해 절반도 알아듣기 어렵다. 간절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학습만이 불확실성을 불식시킬 힘일 것이다. 후발주자라면 앞서 정해 놓은 규칙은 따르되 어제의 익숙한 방법을 모방하기보다 나 ‘다운’, 나만의 차별화된 ‘다름’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두려움이 앞설 때 되뇌는 고은 시인의 ‘낯선 곳’ 한 구절을 오늘도 힘주어 읊어본다.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이승주 (기업문화서비스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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