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19일 (화)
전체메뉴

[기고] 지리산 천왕봉(天王峰)을 유람하며-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12-13 07:00:00
  •   
  • 메인이미지


    추강(秋江) 남효온(1454~1492)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이후 초야에 묻혀 절개를 지킨 생육신(生六臣)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김종직과 김시습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성종 때 관리등용제도의 개선을 비롯하여 국정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昭陵)을 복위할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특히 소릉 복위 주장은 세조의 왕위 찬탈과 정난공신의 명분을 비판하는 것이어서 훈구파의 심한 반발을 샀다. 그 이후 그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유랑생활을 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전국을 떠돌다가 성종 18년(1487) 늦가을 거문고를 메고 지리산의 최고 봉우리인 천왕봉을 올라가서 지은 ‘遊天王峰(유천왕봉), 천왕봉을 유람하며’라는 고시(古詩)에는 그의 삶의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전략)

    未收方寸功(미수방촌공) 조금도 이루어 놓은 것 없는데

    百年如一醉(백년여일취) 한평생이 한 번 취한 듯 지나네.

    儒言明明德(유언명명덕) 유가는 밝은 덕을 밝힌다 하고

    僊言治鼎器(선언치정기) 도가는 정기를 다스린다 하고

    老言守玄牝(노언수현빈) 노자는 현빈을 지킨다 하고

    佛言修不二(불언수불이) 불가는 불이(不二)를 닦는다 하네.

    紛紛萬說者(분분만설자) 분분한 만가지 학설들

    孰爲第一義(숙위제일의) 어느 것이 제일 옳은 것인지

    登臨益慘悽(등림익참처) 올라 보니 더욱 처참해져

    永痛朱公思(영통주공사) 도주공의 마음씀 길이 애달파라

    추강은 늦가을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오르며 남다른 감회를 읊조리고 있다. 살아가다 보니 조금도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없는데 한평생이 한 번 취한 듯 흘러가고 있다.

    유가에서는 ‘대학(大學)’에서 밝은 덕(明德)을 밝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가에서는 정기 (鼎器)를 다스려 단약(丹藥)을 제조하기에 힘을 기울인다.

    노자에서는 ‘골짜기신(谷神)’은 영원하며, 이것을 ‘현빈(玄牝)’이라고 한다. 현빈은 문(門)이며, 하늘과 땅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도(道)는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 작용이 무한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색공불이(色空不二)’를 끝없이 탐구한다. 색(色)은 영원한 것이 없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공(空)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종교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교리들이 어느 것이 제일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천왕봉에 올라서보니 더욱 처참한 심경인데,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범려의 삶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패망시킨 후 서시를 데리고 떠나가 숨어 살면서 도자기를 구워 큰 부자가 되어 ‘도주공(陶朱公)’으로 불렸다. 추강이 바라본 세상은 종교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고 지혜롭게 처신하였던 범려의 삶마저도 길이 애달프게만 느껴진다고 하였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한 편의 고시(古詩)에 잘 담겨져 있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