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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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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롱패딩과 뜨개질- 김형엽(시인)

  • 기사입력 : 2017-1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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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패딩 바람이 강력하게 불고 있다. 그야말로 광풍이다. 두 딸을 둔 나는 겨울을 채비하며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대라도 남들처럼 롱패딩을 사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큰 아이는 롱패딩을 입기에 키가 크지 않다며 사양했고, 작은 딸은 유행을 따라가기 싫다며 과감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지만 어느새 제2의 교복처럼 되어버린 롱패딩을 사주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마치 무능한 엄마처럼 느껴져 머릿속이 잠시 복잡하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쏠림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남들 다 유행을 따라가는데 나만 따라가지 않으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유행의 대상이 고가의 상품일 때는 좌절감마저 생기기도 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지나치게 유행을 따를 때 일각에서는 개성을 잃어버릴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유행은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점도 있기에 유행쏠림현상을 마냥 질타할 수만은 없다.

    롱패딩 바람이 한창 불 무렵, 한 친구를 만났다. 꽤 오랫동안 퀼트 작업을 해왔던 친구는 최근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입을 스웨터 뜨기에 도전한다고 한다. 뜨개 옷은 유행을 타지 않아 족히 10년은 입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친구의 표정은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래전, 나의 어머니는 겨울이 가까워지면 가족들의 스웨터나 조끼를 직접 뜨개질로 만들어 주셨다. 식구들이 많아 내 순서까지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색색의 뜨개질로 만든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다. 이렇듯 누군가를 위해 옷을 뜬다는 것은 참 위대한 일이다. 한 코 한 코 안뜨기와 겉뜨기를 교차하며 완성되어 가는 옷은 그 옷을 입을 사람에 대한 간절한 기도문을 아로새긴 것과 마찬가지다.

    뜨개 옷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친구의 도전에 나도 마음이 동해 올겨울엔 초록 목도리를 하나 떠보기로 하고 현재 50㎝가량을 떠 나가고 있다. 워낙 초보라 문양은 고사하고 기본 뜨기로 겨우겨우 늘려가고 있는데, 한 줄 한 줄 늘어날수록 뜨개질이 우리네 인간관계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촘촘해서도 모양이 예쁘지 않고 너무 느슨해도 결이 살아나지 않으니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코를 빠트리는 일이 없도록 너무 성급하거나 방심해서도 안 된다. 일정한 간격을 잘 유지할수록 앞과 뒤가, 위와 아래의 결이 곱고 사랑스럽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니 올 한 해 나의 인간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싶다고 뜨개질의 코를 빠트리듯 상대의 마음을 놓쳐버리기도 했고 팽팽하게 조이거나 느슨하게 풀어 버리기도 했다.

    그랬으니 한 해를 되돌아보는 내 마음의 무늬가 고울 리 없다. 초록 목도리가 완성되기까지 아직 많은 실이 남아있다. 롱패딩이 가리지 못하는 어떤 마음의 추위를 따뜻하게 덮을 수 있도록 반성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다시 한 코 한 코 실과 대바늘을 교차해 나갈 생각이다. 더 이상 코를 빠트리는 일 없이 조심조심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건너가듯.

    김 형 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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