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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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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경남교육 70년- 이학수 뉴미디어부장

  • 기사입력 : 2017-1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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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 송년모임이 잦다. 부담 없는 자리가 동창모임이다. 짝사랑, 첫사랑으로 시작해 ‘땡땡이’ 무용담까지. 과거로 돌아가 추억에 빠져든다. 가난이 일상이던 시절, 학교도 가난했다. 고사리손으로 땔감용 나무를 하러 산을 헤매기도 했다. 학교 공사에 학부모 동원은 다반사였다. 도시지역 학교는 교실이 모자라 ‘콩나물 교실’에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입학하면서 학생수가 크게 늘었다. 이 세대의 입학 시작 시점은 대략 초등학교 1962년, 중학교 1968년, 고등학교 1971년이다. 폭발적인 학생수 증가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중학교 입학시험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오답 시비를 불러온 ‘무즙파동’ ‘창칼파동’은 교육열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부모 세대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 공부시키기에 매달렸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학력주의와 학벌사회로 자녀가 지쳐갈 때 학교도 힘들었다. 과도한 정치개입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5·16군사정변으로 군인들이 집권하자 교육을 통제했다. 반공이 대한민국 교육이념의 기준이 됐다. 군사정부는 반공도덕 교육을 통한 인간 개조 운동을 부르짖었다. 국가 중심의 하향식 교육 이념의 압권은 1968년 반포한 국민교육헌장. 학생들은 뜻이 뭔지도 모르고 달달 외워야 했다. 1973년 유신헌법 이후에는 유신과업 수행에 학교가 동원됐다.

    ▼경남도교육청이 경남교육 70년의 발자취를 담아 70년사를 냈다. 옛 사진을 보면서 교육자치가 사라진 일선 교육기관의 한 면을 다시 접했다. 국민교육헌장 실천 우수사례를 발표하고, 반공교육 자료를 보급해야 했다. 교정에 충효탑을 건립하고 매일 국기하강식을 거행했다. 아쉬움과 아픔을 뒤로하고, 앞으로를 내다본다. 돈이 학벌을 낳고 다시 학벌이 돈을 낳는 사회다. 진정 배움이 즐거운 시대가 오긴 할까.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지금의 학교는, 경남교육 100년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이학수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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