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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산다 (12·끝) 혼자이지 않기 위해 혼자가 되고자 했던 나

  • 기사입력 : 2017-12-22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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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홀로…. 쓸쓸한 단어다. 싫어하지만 또 익숙한 단어다.

    육남매의 늦둥이 막내로 자랐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고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너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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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들이 이 글을 보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한편으론 많이 미안해 할 게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쓸쓸하고 외롭게 컸다. 혼자라고 느껴진 때가 많았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는 가족들을 하루종일 일터로 나가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서로 살을 부비고 웃음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이 갖고 있는 로봇 장난감, 다마고찌 같은 것들이 부러웠지만, 사달라고 조를 수 없었다. 학원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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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로 나간 가족들을 홀로 기다리는 시간은 늘 길었다. 지루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갖고 노는 대신 라디오를 들었다. 아홉 살, 일곱 살 터울이자 고등학생인 형들의 연애편지를 몰래 꺼내 읽곤 했다. 형들은 공부는 열심히 안 했지만 인기가 많아 편지를 넘치게 받아왔다. 그래도 지겨우면 학교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꺼내 읽다 잠이 들곤 했다. 일기를 쓰고 드라마를 챙겨봤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그래서 짠하다. 너무나 일찍 어른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혼자' 있기 싫어졌다. 친구들, 선생님들께 이쁨을 받으려 애를 썼다. 반장을 도맡았다. 늘 웃음기 띤 얼굴이었던 까닭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했다. 내가 받는 주목을 사랑과 등가의 선상에 놓기도 했다.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혼자가 되면 어쩌나 마음 한켠은 늘 초조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빈방에 혼자 불을 끄고 내안에 있는 불안과 초조를 어둠에 집어넣었다. 다음 날이면 밝은 빛으로 나갔다.

    외롭지 않으려, 혼자 남겨지기 싫어 나는 또 많은 연애를 했다. 늘 여자가 많다는 꼬리가 따라붙어 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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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스로에게 확신할 수 있는 사랑은 그러나 흔치 않았고,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럴수록 상대에게 나를 더 헌신했다. 역시나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날이면 더 사랑을 달라고 그들에게 청했다. 그러나 나를 좋은 남자친구라 여겨줬던 이들은 어느새 그런 나를, 나의 방식을 부담스러워하며, 함께 불안해했다. 나를 떠나기 전부터 새로운 둥지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옮겼다. 이런 방식으로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은 때때로 배신감과 '화'로 변해 그들과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이제 그러지 않을 나이가 됐다.

    지금까지 길고 재미 없는 이야기이자 뜬금 없는 고백이었다. 사실 열한 편에 걸쳐 썼던 기자살롱 '나 혼자 산다'도 그러했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 즐거움 넘쳤던 나를 보여주려 부단히 '혼자이려' 애를 썼다. 나는 여전히 내가 받는 주목에 목마른 중학생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이 시리즈를 쓰는 동안 자주 했다. 그럼에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관심받기 위해 억지로 나를 보이는 시간이 몹시 힘들었다. 그 시간들의 대부분이 사실 혼자가 아닌 시간이었다는 것도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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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진짜 혼자가 되어 보려 이 시리즈를 끝내고자 한다. 타인의 사랑을 빌려 나의 존재를,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려 부단히, 그러나 외롭고 아프게 애썼던 그동안의 내 삶의 방식에도 작별 인사를 하려 한다. 새해에는 다른 형태의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라 다짐한다. 나의 분발을 바라며.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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