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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와 피로사회-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기사입력 : 2017-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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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고 미술관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우편물이 도착해 있다. 각종 세금 명세서는 기본이고 거래 업체에서 보낸 지출 증빙서류도 있다. 무엇보다 다른 미술관, 갤러리, 그리고 작가들이 발송한 전시 자료가 압도적이다. 어떻게 매일 이렇게 많은 전시 자료가 날아오나 싶을 정도로 전시 관련 소식은 끊임없이 도착한다. 방재실에서 우편물을 챙겨 4층 사무실까지 들고 올라가다 보면 그 무게에 가끔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 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짜증은 가끔, 아주 가끔이다. 평소 전시 정보를 담은 이 인쇄물들은 커피 타임을 즐기는 유용한 아이템이 된다. 자리에 앉아 전국에서 도착한 전시자료를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이 인쇄물들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저 종이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을 잘라 내었을까’라는 의문이 직관적으로 떠오르고, ‘전시를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종이 인쇄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굳이 이렇게 많은 전시들을 개최할 필요가 있을까’로 넘어간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사실 전시는 정말이지 생각보다도 많이 개최되고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대안공간 등에서 상시적으로 개최되는 전시 외에 작가들 스스로 조직한 단체에서 개최하는 전시도 있다. 무엇보다 작가들 개개인이 개최하는 개인전을 추가하면 전시 숫자는 쑥 늘어난다. 일반적인 미술작가의 경우 대부분 자신의 돈을 들여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는 걸 감안하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여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는 거의 강박적이다. 연예인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면 그 생명이 끝났다고 여기는 것처럼 작가들은 전시를 해야만 그 존재를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러니 작가들은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전시에 참여하려 하고, 그 힘든 개인전을 매년 만들어낸다.

    이런 분위기는 한병철 교수가 말한 ‘피로사회’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지금의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착취하고 관리하는 성과사회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 사람들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았다면, 현대인들은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와 성과로 스스로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작가들은 단체전이든 개인전이든 그게 꼭 강제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다만 다들 하는데 나만 안할 수는 없지 않느냐? 내가 다른 작가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하려면 전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면서 그 피로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누구도 전시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전시에 참여해야 하는 미술계의 구조는 ‘피로사회’의 전형이다. 그러다 보니 전시는 계속 개최되고 과잉 생산된다. 작가는 이런 미술계의 구조에 갇혀 있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이 구조를 재생산하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태도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다 보면 어느 순간 피로도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이 수준이 되면 ‘우울’이라는 증세가 개인의 삶을 장악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강박의 세계에서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착취하지만 이 또한 구조적으로 구축된 사회에서 발생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맹목적 흐름에서 잠시 비켜나가 스스로 ‘멈춤’을 행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긍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정성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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