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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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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석양 길에서 ‘길동무’에게- 박동소(독자·함양군 함양읍)

  • 기사입력 : 2018-0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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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게, 길동무! 뜨고 지는 해가 일흔에 하나를 더하려 하고 있다네.

    이맘때 모두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싶네만, 요즘 석양이 연출하는 노을이 아름답고도 감사하기가 여느 때와는 다르네. 여보게, 나의 길동무! 살아온 세상이 다를진데 자식들인들 어찌 길동무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희로애락을 공감하랴 싶다네. 언젠가 자네가 마누라한데도 못한 얘기 들어보라고 했지? 그때 자네의 길동무는 이해할 수 있었다네.

    오늘도 새벽에 너무 일찍 잠이 깨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네. 허락된 시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인생을 위한 창조주의 완벽한 배려가 아닐까고 말일세. 또 요즘 지나온 세월이 종종 뒤돌아보이기에, 이 또한 뉘우치며 살날 그리 많지 않은 인생을 위한 창조주의 기막힌 배려가 놀라울 뿐이라네.

    여보게, 길동무! 누가 세월을 유수와 같고 쏜살같다고 했든가! 유수 같고 쏜살같다면 눈에 보이기라도 하니 막아도 보고 잡아도 보련만 그것도 아닌 성싶네. 그래서 누가 빠른 세월을 손으로 잡아 보려 하니 세월은 어느새 몰래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갔더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너무 서러워 말게. 늙어 가지 말고 익어 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벌, 나비, 새들도 더 많이 찾아와 외롭지도 않을 테고, 또 그들을 통해 세상 사는 얘기도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테니 좋지 않은가?

    지난 한 해 참 고마웠네. 이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이라도 입안에 있을 때 잠시 만족을 줄 뿐, 지난 한 해 자네가 보내준 메시지만 하리요! 새해에도 더 많이 함께 걷는 길동무이고 싶네. 소리 없는 세월 몰래 끼어들어 우릴 갈라놓지 않도록 두 손 꼭 잡고 함께 말일세.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하는 얘기 들어가며 입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얘기하며 걸어 보세나. 각박한 삶의 조각들일랑 막걸리 잔에 풀어가며 편안한 차림으로 걸어 보세나. 그리고 언제나 진인사 대천명의 농심으로 사세나. 이보게, 길동무! 가끔은 사랑하는 손주 손잡고 만나 보세. 그때마다 우리, 참 나를 찾아 간다는 ‘아리랑’ 노래도 부르며 아름다운 만추의 여정을 함께해 보세나. 앞만 보고 달려 온 욕심의 빈자리에 지나쳐버린 참 행복 찾아 담아 보며 가세나. 또 남은 사람 힘들게 할 회한 남기지 않도록 뒤돌아보며 가세나. 이제 우리에겐 연습에 필요한 허락된 시간이 없질 않은가?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선각자의 가르침을 잊지 마세나.

    이 사람아! 옛날 세월로 치자면 이미 우린 덤으로 사는 세월이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우리 참 먼 길 돌아 만났네 그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맘때면, 눈 덮인 우포를 날아오르며 기러기 우는 그곳 내 고향! 그곳 서녘 하늘에도 한 해가 저무는 아름다운 노을이 있겠네 그려. 이보게, 길동무! 하나둘 떠나는 소식 듣는 날, 자네가 보내주는 카톡 소리가 있을 테니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 같네. 이제 우리 이렇게 기도하세나.

    창조주여! “여기 너와 나 함께 저기 언덕에 올라, 밝은 눈, 밝은 귀, 맑은 정신으로 찬란히 떠오를 무술년 태양을 볼 수 있는 건강 주심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말일세.

    박동소 (독자·함양군 함양읍)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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