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0일 (목)
전체메뉴

이야기가 있는 공간 (16) 마산 지하련 주택

근대 여류 소설가, 뜨거운 문학 꿈 꽃피웠던 곳

  • 기사입력 : 2017-12-15 07:00:00
  •   

  • 지난 2015년 6월, 여느 때처럼 야구경기가 한창이던 마산구장의 주심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인근 화재로 연기가 야구장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화재는 30분 만에 진화돼 경기는 속개됐다. 마산소방서는 거주자인 87세 할머니가 모깃불을 피우고 버린 재에서 남은 불씨가 되살아나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날 뻔한 이 이야기를 야구장이 아닌 불이 난 주택으로 포커스를 옮겨 보니 숨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메인이미지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소설가 지하련 주택. 2년 전 화재가 난 후 방치돼 있다.

    용마고 뒤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이 주택은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2층짜리 일본식 건물이다. 인근 노씨 주택과 함께 당시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근대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깊다. 이 집은 콘크리트로 마감돼 있지만 서양 건축양식과 일본식 목조주택의 형태가 더해진 ‘문화주택’으로 분류된다. 경상남도 근대건축문화유산에 따르면 화마가 덮치기 전 이 집은 다다미방과 주방, 화장실, 복도 등 평면뿐만 아니라 목조 구조와 지붕의 형태 등이 내외부 모두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의 모습으로 대체로 원형을 잘 유지하던 곳이었다.

    일본식 시멘트 기와를 사용했는데 특이한 점은 공간마다 지붕의 위계를 달리해 리듬감 있는 주택으로 장식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본채 외에도 목조로 지어진 창고와 물치, 부속건물 등이 딸려 있다. 동네 사람들이 옛날집, 부잣집으로 불러왔는데, 1930년대 이 장소가 행정구역상 ‘창원군 내서면 산호리’로 마산에 인접한 작은 시골마을인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저택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컸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목재창호는 화재로 형태를 잃었지만 덧창과 쇠창살로 만든 창문틀은 남아 있다. 웅장하고 특색있는 붉은 벽돌 아래 화강석을 이용해 마름모꼴로 석축을 쌓았는데 이는 지진이 잦은 일본이 자주 쓰는 견치석 쌓기 공법으로 당시 일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메인이미지
    소설가 지하련.
    메인이미지
    지하련의 남편 임화.

    이 집이 더욱 특별한 데는 건축양식보다 안에 살았던 인물의 영향이 크다. 주택은 마산 출신 여류 소설가 지하련(1912년~?)의 이름을 따 ‘지하련 주택’이라고 불린다. 지하련은 근대문학사에서 신변소설 혹은 심리소설에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 작가로 파격적인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역에서조차 이 주택과 지하련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다시 조명되고 있다.

    그녀의 본명은 이숙희로 1912년 태어나 거창군 위천면에서 지주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유한 가정환경과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오빠들의 영향으로 떠난 일본 유학 중 재일조선인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하다 인생 행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 단편서사시와 리얼리즘론, 신문학사 등으로 근대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문학가이자, 카프(KAPF) 서기장으로서 프로문예운동을 이끌었던 문예운동가 임화(1908~1953년)다.

    연정을 숨기고 각자 한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1934년 겨울, 평양의 한 병원에서 재회하게 된다. 임화가 세칭 ‘신건설 사건’으로 불리는 카프 제2차 검거 때에 폐결핵의 악화로 피검을 면한 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던 곳 중 한 곳이었다. 연인이던 이귀례와의 관계도 소원해진 그때 지하련은 마산에서 평양까지 멀고 먼 길을 달려 와병 중인 임화를 찾아갔다.

    메인이미지
    불이 나기 전 지하련 주택의 모습.

    이듬해 임화는 마산행으로 그 마음에 화답했다. 일제강점기의 마산은 기후가 좋고 풍광이 수려한 데다 결핵치료로 유명한 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이 있어 결핵환자들이 찾는 곳이었다. 그러나 마산에 지하련이 있어서 요양지로 마산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1935년 7월부터 1938년 2월까지 2년 6개월가량 마산에서 지하련의 지극한 간호를 받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서서히 삶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 사이 두 사람은 1936년 여름에 결혼하며 이 주택과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당시 ‘마산부 상남동 199번지’에 신혼살림을 차려 아이를 낳고 단란한 신혼기를 보냈다. 임화는 새로운 뜻과 의지로 문학적 재기를 위해 노력했고, 지하련은 아내로서 그 곁을 지켰다. 이때가 이 부부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신혼집이 있었던 곳은 허물어져 현재 옆 건물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메인이미지
    지하련과 임화의 신혼집 터.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산호동 지하련 주택은 지하련이 남편과 서울로 상경했다 1940년 건강 악화로 마산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갖게 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임화의 병간호를 하다가 결핵에 감염돼 그해 5월 친정에 있는 오빠 집에서 요양하게 된다. 그녀는 이 집에 머물면서 ‘여성’지 1940년 10월호에 ‘일기’를 발표한다. ‘우리 가정 아빠를 논함’이라는 특집에 실린 이 글은 지하련이 여러 날에 걸쳐 쓴 일기를 날짜 표시 없이 편집해 놓은 것으로 글 전체에 병환 중인 스스로의 고독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서술돼 있다. 바로 이 글이 ‘지하련 주택’에서 쓰였다.

    뜰엔 백합이 한창 고우나 내 맘은 그저 서글프다. 생각하면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죽음이란 분명히 두려운 것이고 병고란 한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고독이란 죽음보다도 더한가 보다. 낮에 서울서 편지가 왔으나 역시 맘 아플 뿐이다. “세상이 소란해서 맘 둘 곳 없는데 너는 앓고 아이들은 가엽고… 나는 고달프고 쓸쓸타”라고 그(임화-인용자)는 말했다. -‘일기’ 중 일부-

    지하련은 이 집에서 병마와 고독과 싸우며 단편소설 ‘결별’, ‘체향초’를 집필했다. 특히 ‘문장’지 1941년 3월호에 실린 ‘체향초’는 신병 치료차 마산에 내려온 주인공이 가족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어릴 때 따르던 ‘산호리 오라버니’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소설 속 배경지가 바로 지하련 주택이다. ‘불행한 일’로 몸을 다친 오빠가 시가지에서 떨어진 산호리에서 가축과 나무를 기르며 사는 소설 속 내용은 지하련의 자전적인 모습으로 주인공들이 겪었던 일상적인 체험과 그 체험을 겪는 주인공의 까다로운 내면 묘사 등 섬세한 필치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메인이미지
    현재 지하련 주택 내부 모습.
    메인이미지
    현재 지하련 주택 내부 모습.
    메인이미지
    현재 지하련 주택 내부 모습.

    사실 이 주택은 지하련의 셋째 오빠인 이상조의 집으로 임화와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하련의 소설의 배경으로 중요한 장소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지하련 주택’으로 불리고 있다. 그녀는 소설 ‘도정’으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소설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하련은 비범한 자질과 예민한 감각을 더 이상 꽃피우지 못했다. 임화를 따라 1948년 12월께 월북했기 때문이다. 월남한 문화예술인들에 따르면 지하련은 북한에서 임화가 처형당한 뒤 그를 찾아 평양 거리를 미친듯이 헤매고 다니다 평북 회천 인근의 교화소에서 1960년에 병사했다고 한다.


    지하련 주택은 화려한 삶을 초라하게 마무리한 그녀의 운명처럼 화재 후 방치돼 그 모습을 잃고 황폐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집이 재개발에 묶여있는 데다 4명의 소유자가 근대건조물 지정을 달가워하지 않아 곧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박정선 교수는 이 집의 보존 필요성을 피력했다. 잔존한 일제강점기 문화주택이라는 점과 항일운동가의 집이란 점에서 독립운동사적으로, 그리고 소설가 지하련과 인연이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뜻있는 지역의 문화인들이 지난해 가을 ‘지하련 주택 보존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보존 필요성과 방법, 활용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메인이미지
    지하련 주택 입구.

    마당에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들이 초겨울 스산한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청춘의 가장 빛났던 시절, 이 집을 배경으로 꿈을 펼친 그녀는 자신의 삶의 궤적이 묻어 있는 소중한 공간이 쓰임 있는 곳으로 활용되길 바라고 있을 테다. 희비쌍곡선이 마주 그려진 이 공간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당찬 그녀의 모습을 닮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글=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lee@knnews.co.kr

    메인이미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정민주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