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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사제지연(師弟之緣) - 스승과 제자의 인연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0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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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필자가 마산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이면서 영어를 담당하는 진현부(陳鉉富) 선생님이 계셨다. 젊은 분이고, 실력이 대단한 듯했다. 유머감각이 뛰어났는데, 본인은 절대 웃지 않았다.

    가끔 ‘소야영문법(小野英文法)’이 좋은 책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군대에서 이 책을 얻어 열다섯 번 정도 읽어 영어에 문리(文理)가 트여, 제대 후 대학 가는 데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마고 영어 교사 가운데는 대단한 분들이 많았다. 뒤에 대학교수가 된 분이 많았는데, 어떤 교사는 언제나 분필 하나만 갖고 들어가 수업을 하는 분도 있었다. 유명한 ‘성문종합영어’를 지은 송성문(宋成文) 선생도 마고에 근무하다가 필자가 입학하기 직전에 옮겨갔다.

    1971년 복학하니, 진 선생님은 안 계셨다. 그 이후로 어디 계신지도 몰랐지만, 한번 만났으면 하는 그리운 마음은 늘 갖고 있었다.

    작년부터 창원에 사는 친구 김성현(金成炫) 사장과 함께 필자의 연구소에 한문 공부하러 오는 이호복(李昊福) 사장이 있는데, 자기 외아저씨가 마고 영어교사였다고 말했다. “외아저씨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진현부 선생입니다”라고 했다. “아! 진현부 선생님. 2학년 때 담임선생이었는데. 한번 만났으면 했는데.” 그에 대해서 비로소 상세히 알았다.

    그는 진주 출신이었는데, 부친이 큰아들만 공부시키려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총명하고 천성적으로 공부를 좋아하여, 아침에 지게 지고 농사일 하러 가는 것처럼 해가 지고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몰래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영어를 워낙 좋아하여 영문학을 전공해 영어 교사가 되었다. 노래를 가수 못지않게 잘했는데, 부산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대학 학비를 벌었다고 했다.

    문학박사를 받고, 동의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돼 정년퇴임을 했다.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즈음, 창원에서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지난해 12월 28일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진 선생님을 모셨다.

    근 50년 만에 여러 가지 옛날 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의 노래도 수준급이지만, 필자도 노래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노래를 시작해 새벽 1시 반까지 이르렀다. 다시 이야기를 하다가 3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다.

    올해 팔순인 선생님은 “늙으니 재미난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는 근래에 없던 일이다”라며 즐거워했다.

    사제간의 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사제간의 짙은 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師 : 스승 사. * 弟 : 아우 제.

    * 之 : 갈, …의 지. * 緣 : 인연 연.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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