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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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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기룡 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절망은 희망이 됐다
농촌서 ‘국악 꿈’ 일구는 대금 명인

  • 기사입력 : 2018-01-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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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금은 지금부터 1300여년 전인 신라 신문왕 때부터 전해 내려온, 가로로 부는 대나무악기를 이르는 신라삼죽(대금,중금,소금) 가운데 으뜸이 되는 악기다.

    산조 연주에 쓰이는 대금은 시나위나 남도무악 등 다양한 가락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독주를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연주자마다 음의 높이가 다른 특징을 가진다.

    우리 전통 관악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악기로서 오랜 세월 동안 독특함을 간직한 채 전승되었으며, 연주 속에 흥겨움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 김기룡(55)씨. 그는 함양문화원 등에서 지역민이나 지역의 학생들과 어울려 국악의 흥에 빠져 있다. 안정적인 수입은 없지만 텃밭도 가꾸고 토종닭을 키우며 행복하게 생활하는 등 장애를 딛고 그 아픔을 사랑의 힘으로 승화시켜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서 인생 2막을 이어가고 있다.

    김기룡 이수자는 '삶은 항상 도전하는 것'이라며, 지금하고 있는 일이 잘 된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세계장애인합창대회를 유치해 감동의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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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룡씨가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 그는 거창 남상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함양군 병곡면 소현마을로 이주해 초·중·고교를 다녔고, 상지대 무역학과를 다니다가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한 지 한 달 만에 지리산을 등반하던 그는 암벽에서 떨어져 하반신 장애인이 됐다.

    그는 어깨 아래가 완전 마비돼 진주 모병원에서 2년여 투병생활을 했으며, 2년간 호흡부전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담당의사의 권유로 대금과 가까이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인생을 함께하게 됐다. 척추를 다친 사람은 호흡이 일반인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호흡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대금이다. 대금을 불면 음의 빛깔이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호흡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는 대금 소리에 반해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인 김동표 선생을 찾아가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10년을 넘게 배우며 당당한 이수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국악교실 운영= 대금, 해금, 단소, 장구, 사물, 태평소 등 국악 전반에 대한 지식이나 예기 습득을 위한 국악교실과 대금 체험관을 운영하는 김씨는 대금과 단소, 장구를 직접 제작한다.

    그는 마산대, 창신대, 원광대 전통공연 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진주교육대학원 국악학과와 경상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밟는 등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또 지난해부터 대구대학교 장애인학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350여만원에 달하는 한 학기 등록금의 부담 때문에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동안 함양읍에서 조그마한 국악교실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 지금은 병곡면 소현마을 문화체험관에서 매주 금·토요일에 국악 실기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연과 교감하는 소리,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배움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동안 국악교실을 운영하면서 자활근로 참여자 소양교육, 정보화 농업인 교육, 장애인 문화정책 콘서트 등에 참석해 무료 봉사를 하는 등 지금은 지역주민과 방학을 이용한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사물놀이, 대금, 단소 등 국악교실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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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을 제작하고 있는 김기룡씨.



    ◆대금에는 쌍골죽= 그는 대금을 비롯해 단소와 태평소, 해금 등 국악기 대부분을 다룬다. 또 대금과 단소, 장구 등을 직접 제작한다. 대금의 재료가 되는 쌍골죽(雙骨竹·양쪽에 골이 팬 대나무)은 직접 찾아다닐 수 없어 사람을 시켜 찾는다. 돌연변이인 쌍골죽은 여간 찾기 힘든 것이 아니다. 산삼만큼이나 찾기 힘든 것이 쌍골죽이다. 함양 인근에 있는 쌍골죽이 야무지고 단단하지만, 하루 종일 다녀도 한두 개밖에 찾지 못한다. 쌍골죽은 살이 두껍고 단단해야 소리가 맑다.

    그렇게 마련된 재료를 다듬어 직접 대금 등을 제작한다. 작업실에는 대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드릴 등의 도구가 준비돼 있다.

    대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나무의 진을 빼고, 휨을 바로 잡고, 지공을 뚫어 길이에 맞게 자르고 다듬어서 구멍을 낸다. 대금 음공수(音孔數)는 모두 6공, 김을 넣는 취구(吹口)와 제1음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다. 이 청공은 아름다운 음의 빛깔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대금 제작은 다른 악기에 비해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만들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음정’과 ‘소리’ 조정이다. 대금 제작은 한국음악에 어느 정도 능통하지 않고서는 그 정확한 음정을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된 악기를 만드는 것은 그리 단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취구의 크기나 각도, 지공이나 내경의 처리에 따라 악기의 소리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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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룡씨가 자신이 만든 대금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계획= 그는 전통국악문화체험장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주민들을 마을로 불러들여 ‘젊은 농촌마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지역 문화예술인의 재능 및 참여기회 확대를 위해 전시, 공연, 발표회를 열고, 대금, 미니장구, 단소, 중금, 퉁소 등 국악기 제작 체험장을 운영하고 싶단다.

    또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세계장애인합창대회를 여는 것도 그가 가진 꿈의 하나다. 세계적으로 장애를 가졌지만 끼 있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 그는 이들에게 무대에 서는 기쁨을 주고 싶다. 하나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던 결과의 자리, 감동의 무대가 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합창대회를 통해 희망을 주고 싶어 한다. 희망을 주는 음악, 해냈다는 자부심, 억지로 정형화된 음악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음악, 실수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해냈다는 감동의 눈물, 각자 재능에 맞게 만들어 나가면 된다.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감동하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목표다.

    글·사진= 서희원 기자 seh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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