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4일 (수)
전체메뉴

단죄-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8-01-24 07:00:00
  •   
  • 메인이미지


    누가 그랬다. 정치 보복과 비리 수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또 다른 누구는 말했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란 상반된 주장이 충돌하면서 국론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백 보 양보해서, 정치 보복과 비리 수사가 달랑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을 만큼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지금의 상황을 진영 논리로 해석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

    정치 보복이라든가 국론 분열이라든가 하는 말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이쯤 하고 접으라는 뜻으로 들린다.

    가족이나 측근 비리와 상관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말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 권좌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구린 구석이 안 생길 수가 있느냐, 관행으로 해오던 것을 새삼 들춰내서 처벌하는 게 온당키는 한 거냐, 왜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느냐 하는 투의 말이다.

    국민의 이름을 차용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의 칼끝이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던지, 많은 국민들이 이 상황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식의 성명을 발표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정치 보복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며 또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고 답했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애시당초 성명서를 작성할 때 고려의 대상이 전혀 되지 않는다.

    물론 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에 대한 잇단 수사는 헌정사에 매우 불행한 일이기는 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국론이 나눠지면서 찬반 진영 간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또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는 시기여서 전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것 자체가 국격을 손상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 보복으로 비치면서 우리 사회가 잃는 것보다 비리 수사를 통해 얻는 게 훨씬 많다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중단 없이 하는 게 맞다. 일부 오해가 생기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하는 게 마땅하다. 훗날 정권이 바뀌어 또 다른 수사가 벌어지더라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수사를 멈춰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고, 처벌은 가혹해야 한다. 그래야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분노에 떨게 한 권력형 비리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나만 나쁜 짓을 했느냐, 누가 누구를 단죄하느냐 항변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일 뿐이다.

    국격 손상이라는 것도 그렇다. 한 나라가 세계 많은 나라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살아가는 현 시대에 남의 나라, 남의 나라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 앞 포토라인에 서고 또 감옥에 가는 것이 국격을 깎아내린다기보다는, 전직 대통령도 잘못이 있다면 수사 대상이 되고 또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국격을 높이는 길이 아닌가.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서영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