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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빈자리는 빈자리인 채로- 송미선(시인)

  • 기사입력 : 2018-01-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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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맹추위가 기승이다. 전국을 영하권으로 끌어내린 수은주는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종종거리는 발걸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붙었다. 빙판으로 변한 도로는 크고 작은 낙상사고와 운전자들을 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늘길과 바닷길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물리적 추위만큼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대적 결핍감을 느낄 때다.

    결핍의 사전상 의미는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랄 때를 말한다. 메우거나 피해갈 수 없는 선천적이거나 본질적인 결핍도 있지만, 현대사회는 물질적 가치변화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예고 없이 생기는 상대적인 결핍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이러한 결핍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아마 타인과 비교할 때부터 -초등학교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낸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면 전혀 부족하지 않는 것까지도 애써 찾아내어 결핍이라는 틈을 벌어지게 한다.

    몇 걸음 떨어져 타인과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상대적 결핍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모자람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기가 수월할 것이며,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데 편견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모자람을 인식하는 순간 타인과의 관계도 원활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상대적 결핍감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비어 있는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어 있기에 언젠가는 채울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인정해주고, 받아들임으로써 상대적 결핍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떠나온 고향을 지키고 있는 빈집처럼 가슴 한구석에 빈자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노크도 없이 들어가 눈을 감고 벽에 기댄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기운들이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하며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민다. 이러한 빈자리에 문학이라는 벤치를 들여 놓는다. 낡은 구두를 신은 무거운 발걸음이 잠시라도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벤치를 말갛게 닦아둔다.

    결핍을 사랑할 줄 안다면 구태여 빈자리를 메워야만 할까? 꽉 채워진 그릇은 더 이상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흘러 넘쳐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벤치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잠시 쉬었다 가라며, 지나가는 바람을 불러세운다.

    나는 벤치에 몸을 기댄 바람의 옆자리에 앉아 ‘섬’을 펼친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어떤 가상의 고통 때문에 곧 그곳을 떠나버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시험 삼아 그리고 마치 감방에 갇힌 수인처럼 중심에서 변두리로 한 번 나가본 것이었다. 좁은 골목, 높은 집들, 숨막히는 공기. 나는 멀리 와 있었는데도 갇혀 있었다. 어디서부터 멀리? 어디에 갇혀서? 내 주위에다가 여러 개의 뿌리들이 내리게 한 뒤에야 나는 내가 욕망했던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또 그다음에야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을 분간하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행복감에 젖어서 다른 모든 것들과 가까이 있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하여 내게 필요했던 저 숨은 작업이라는 생각과 나 자신은 서로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송미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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