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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기생충 정신- 강지현 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8-02-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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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생충 같은 인간아.” 기생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기생충이란 말은 보통 욕으로 쓰인다. 기생(寄生)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생활함’이다. 좋은 말로 순화하면 ‘더부살이’, 있는 대로 말하자면 ‘빌붙어 사는 삶’이다. 기생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어감과 기생충의 징그러운 외모는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때문에 기생충은 그동안 박멸과 퇴치의 대상이었다.

    ▼1950~1970년대 우리나라는 ‘기생충 왕국’이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회충, 편충, 구충, 십이지장충 등에 감염돼 있었고, 한 사람이 2종 이상의 기생충을 품고 살았다.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971년 84.3%에 이르던 감염률은 2013년 2.6%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엔 귀순하다 총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북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되면서 잊혀 가던 기생충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생충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깊다. 학자들은 고생대 상어의 분변 화석에서 기생충 알을 발견했다. 2억7000만년 전 기생충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얘기다.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에서 진화를 시작한 것이 불과 20만년 전이니 기생충은 인간의 대선배인 셈이다. 오랜 시간 기생충은 숙주인 인간과 공생해왔다. 백해무익하다는 편견과 달리 대부분의 기생충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기생충 없는 너무 깨끗한 환경이 더 문제다. 1990년대 이후 알레르기, 아토피가 극성을 부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기생충의 진면목을 알아본 선진국에선 이미 기생충을 이용한 면역질환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생충 박사인 단국대 서민 교수는 말한다. “기생충 정신을 본받는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에 따르면 기생충은 숙주를 귀하게 여기며 늘 공생의 길을 모색한다. 밥 한 톨에 만족하는 무소유를 실천하며, 싸우지 않는 대타협의 정신으로 다 같이 잘산다. 끊임없는 욕심으로 파괴와 차별을 일삼는 인간과 반대다. 기생충을 욕하기 전 자신이 기생충보다 못한 인간은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강지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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